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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an 23. 2023

한심하기만 한 선배 공무원에게도 배울 점은 있다

다른 이의 과오를 이용하는 법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는 고사성어가 있다. 말 그대로 '세 명이 길을 가고 있으면, 그 중에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라는 뜻이다.


 이 표현이 유래된 《논어(論語)》의 〈술이편(述而篇)〉에서 공자는 말하길, '나보다 나은 사람의 좋은 점을 골라 그것을 따르고, 반대로 나보다 못한 사람의 좋지 못한 점을 골라 그것을 고치라(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라고 하였다.


 공직 생활을 하다보면 여러가지 유형의 선배 공무원들을 만나게 된다. 인성부터 업무 능력까지 뭐하나 트집 잡을 곳이 없는 선배들부터, 같은 공무원이라는 것이 부끄러울 정도로 돼먹지 못한 선배들까지.


 한번 입사하면 대부분 정년까지 근무하는 직장의 특성상, 우리는 훌륭한 선배든 돼먹지 못한 선배든 그들과 함께 일하고 어울리며 남은 공직 생활을 채워나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우리는 좋든 싫든 우리보다 앞서 이 세계에 들어온 선배 공무원들에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으며 공무원으로서의 삶에 조금씩 익숙해져 간다.


 구청에 근무하던 시절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신규 발령 후 동사무소에서 민원만 떼던 내가 구청으로 발령이 나 처음으로 맡은 업무는 구청 내 한 민원 부서의 '서무회계' 역할이었다.


 당시 내가 발령나기 이전에 그 과에서 서무회계를 하던 분은 나이가 꽤 많은 7급 고참분이셨는데, 알고 보니 서무회계를 맡은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서무회계를 신규 전입자인 나한테 떠넘기고, 자신은 과장에게 울고불고 매달려 해당 과의 가장 편한 자리로 도망을 친 상황이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그런 상황에서 정상적인 인수인계가 될 리는 없었다. 당시 구청 근무 경험 자체가 없었던 나는 제대로 된 업무 수행을 위해 전임자의 도움이 굉장히 절실한 상태였는데, 시스템 사용 방법이나 권한 부여같이 기본적인 것들조차 조심스레 물어봐도 전임자는 언제나 '모르쇠'로만 일관할 뿐이었다. 마치 자신은 고작 '한 달'밖에 서무를 보지 않았으니 당연히 해당 업무를 모르는 게 당연하다는 식의 태도였다.


 전입자란 이유로 모두가 하기 싫어하는 서무회계 자리를 떠맡은 것도 억울한데, 무성의한 전임자의 태도까지 겹치니 도저히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저런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는 것이 너무나도 끔찍했고, 내가 평생을 바쳐 일해야할 이 조직에 저런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죽을 만큼 수치스러웠다. 일이 몰리고 나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가 점점 더 늘어날수록 그 사람에 대한 나의 증오도 같은 비율로 계속해서 늘어만 갔다.


 그렇게 그 선배 공무원에 대한 미움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만 가던 그때, 하루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설령 그만두는 한이 있더라도 저 사람과 같이 초라한 존재가 되고 싶지는 않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그 사람을 싫어하는 걸 넘어, 나 역시도 이렇게 별 생각없이 공직 생활을 하다가는 자칫 시간이 지나 내 자신을 뒤돌아 봤을 때, 그 사람과 마찬가지로 선배들에게 무시 당하고, 후배들에게 없는 사람 취급 당하는 그저그런 인간으로 늙어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끔찍한 생각이 들었다. 상상만 해도 두려운 일이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그런 상황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그날 이후, 그 사람을 맹목적으로 싫어하기만 하지 않고, 그 사람의 행동들 중에 혹여나 나의 평소 모습이 보이지는 않는가 조금씩 관찰하기 시작했다. 해야할 일을 남에게 미루고 있지는 않은지,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뻔뻔하게 우기고 있지는 않은지, 동료들을 대할 때 이유없이 감정적으로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등등에 대해서 말이다.


 사실 공무원으로서 생활하다보면 본보기로 삼고 싶은 훌륭한 모습을 한 선배들보단, '저 경력이 되도록 대체 뭘 한 거지?'라는 생각이 절로 드는 소위 '한심한' 선배들을 훨씬 더 높은 확률로 마주치게 된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이 공무원 조직에 대한 회의감과 부끄러움을 진하게 느끼게 된다.


 하지만 그들을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만으로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 아무 것도 없을 것이다. 오히려 앞서 말한 공자님의 말씀처럼 그들의 모습에서 나의 잘못된 점을 찾고, 그것을 고치려 노력할 때, 그들과 함께 일한 그 지긋지긋했던 시간들에 대한 보상을 조금이나마 얻어 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비록 '반면교사(反面敎師)'일지언정, 나에게 큰 교훈을 남겨준 그 7급 고참 선배에게 참으로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때 그 선배에 대한 증오심과 미움을 통해 내가 앞으로 공직 생활을 하며 갖춰나가야할 '훌륭한 공무원'의 모습이 무엇인지 조금씩 깨달아 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지금 여러분에게도 그 7급 고참 선배와 같은 사람이 옆에 있다면, 그 사람을 미워만 하기보다는, 그 사람을 통해 앞으로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봤으면 좋겠다. 어쩌면 싫기만 했던 그 사람이 오히려 고맙게 느껴지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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