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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Feb 18. 2023

공무원의 끝, 교육행정직 공무원

공직 사회에 파랑새란 없다

 내가 처음 블로그를 시작할 때, 블로그의 제목을 '연수원 두 번 수료한 교행직 공무원의 이야기'라고 지은 이유는 기존에 이미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공무원을 그만두고 또다시 다른 직렬의 공무원이 된 내 경력이 아무래도 흔치 않아 사람들의 이목을 쉽게 끌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런데 요즘 우리 기관에 신규로 들어오는 사람들의 경력을 들어보면 신기하게도 다른 직렬 혹은 다른 지역에서 공무원을 하다 온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체감상 적어도 세 명 중에 한 명 정도는 이미 공무원 경력이 있었던 사람이 신규로 들어오는 느낌이다.


 직렬도 다양하다. 지방직 일반행정에서 넘어오는 사람이 대부분이긴 하지만 타 지역의 교육행정직 혹은 국토교통부, 병무청, 고용노동부 등의 국가직에서 넘어온 사람들도 심심찮게 발견된다.


 기존에 공무원 경력이 있는 사람들이 굳이 백수가 될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재시험을 치고 들어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가 2020년에 일반행정직 공무원을 그만두고 나서 한창 무얼할까 고민하던 무렵, 공무원 커뮤니티를 돌아다니다가 발견한 재미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사실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무려 5급 행정고시를 합격해 세종시에서 일하시던 한 분이 타지 생활의 고단함과 업무 압박에 못 이겨 '5급 사무관을 의원면직하고 서울시 교육청 9급 교행으로 입직해 아직까지 잘 다니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 게시글 아래에는 말도 안되는 소리하지 말라는 댓글과 함께 내가 그 분을 안다, 믿기지 않겠지만 사실이다, 그 분은 행시 출신인 거 소문나는 거 굉장히 싫어하신다 등등 역시 믿거나 말거나인 댓글들이 주르륵 달려 있었는데, 그 이야기의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그 이야기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꽤나 신기했다.


 댓글을 단 사람들 중에 약 절반 가량이 아무리 5급 공무원이라고 할 지라도 타지에서 맨날 야근하면서 고생할 바에야, 워라밸 하나만 바라 보고 4시 반 퇴근하면서 서울 자가에서 편하게 출퇴근하는 게 어떻게 보면 더 나을 수도 있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용자의 대부분이 9급 공무원 준비생인 공무원 커뮤니티의 특성상 그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겠지만, 적어도 이런 주제로 사람들 사이에 의견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그 사실 자체가 그 당시의 나에겐 꽤나 큰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고백하건데 사실 나도 처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할 때만 하더라도 '9급 공무원' 그 중에서도 '교육행정직 공무원'을 하는 것이 어떻냐는 주변의 물음에,


"그 좁은 행정실에 앉아서 평생 경리일이나 해야하는데 내가 자존심 상해서 그걸 어떻게 하겠냐."


라고 불쾌하다는 듯이 대답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오히려 지금은 3년 가까이 다닌 기존 직장까지 포기하고도 9급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되어 나름 그만두지 않고 그럭저럭 직장을 잘 다니고 있다.


 지난 몇 년간의 세월이 직업에 대한 내 인식을 어느정도 바꿔놓은 것이다.


 아마 최근 들어 기존 직렬의 경력을 포기하고 굳이 재시험을 쳐서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들어오신 신규분들도 대부분 나와 같은 인식 변화 과정을 거쳤으리라.


 우리들끼리 하는 우스갯소리로 '결국 공무원의 끝은 교육행정직 공무원'이라는 말이 있다.


 말 그대로 공무원 시험에 뛰어들었던 사람은 처음 시작과 경로가 어찌 되었든 결국 이러저러한 이유로 돌고 돌아 교육행정직 공무원에 정착하게 된다는 뜻이다.


 나를 포함해 이곳으로 옮긴 대부분의 전직 공무원들이 공무원 자체를 그만둘 지언정 다른 직렬로 옮기는 경우는 거의 없는 걸 보면 어느정도 저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적어도 나와 같은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교육행정직 공무원이 비록 최고의 직장은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최악은 아닌 차악 정도의 직장은 되는 것이 아닐까.


 가끔은 그저 '행정실 직원 1'에 불과한 내 처지가 처량하기도 하지만, 퇴근 후의 내 삶을 즐길 수 있게 해주는 존재인 교육행정직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혼술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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