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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Apr 19. 2023

MZ 공무원이 바라는 점심시간

꼭 다같이 모여서 먹어야 할까요

 일반 회사원이든 공무원이든 평범한 직장인들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8시간씩, 일주일에 총 40시간을 근무한다.


 그리고 그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해선 야근수당 혹은 초과근무수당이라는 이름으로 기본급과 별개의 수당을 근로자에게 지급한다.


 말 그대로 기본적으로 약속된 하루 8시간의 근무 시간을 초과하는 노동에 대해서 보상하는 차원의 수당인 것이다.


 그런데 '9to6'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는 직장에서 하루에 보통 8시간이 아닌 9시간을 보낸다.


 8시간 근무 사이에 1시간의 '점심 시간'이 끼어 있기 때문이다.


 하루 근무 시간이 8시간이기 때문에 엄밀히 말하면 점심 시간은 근무 시간에 포함되지 않는다.


 급여를 산정할 때도 점심 시간은 휴게 시간으로 분류되어 계산에서 제외된다.


 하지만 일반적인 직장인들의 경우 '휴게 시간'으로 정해진 1시간의 점심 시간을 마음대로 사용하지 못한다.


 경직된 조직일수록,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일수록 업무 시간의 중간인 점심 시간을 '당연하게' 직원들끼리 '함께' 보내야한다는 고정관념이 구성원들의 머릿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동사무소 근무할 때 한번은 이런 적이 있었다.


 당시 내가 근무했던 동사무소의 민원대는 구성원이 4명이라 점심 시간에도 민원을 받기 위해 둘둘씩 짝을 지어 교대로 식사를 하러 갔었는데, 반드시 함께 짝을 지어 나간 사람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해야한다는 '암묵적인 룰'이 있었다.


 물론 나이대도 비슷하고 사이도 좋은 직원들과는 같이 식사를 하는 게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니었지만, 문제는 나이대도, 성별도, 성향도 다르고 심지어 사이까지 좋지 않은 직원과도 마찬가지로 반드시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처음 몇 번 그 사람과 단둘이 식사를 하고 있으니 한 시간동안 밥을 먹고, 커피까지 마시고, 관심도 없는 서로의 사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묻는 게 여간 괴로운 일이 아니었다.


 오죽하면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식사 시간에 무슨 얘기를 하고 어떤 표정을 지어야할지를 생각하면 온몸에 식은땀이 흐를 정도였을까.


 그렇게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며칠을 겨우겨우 버틴 후, 나는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용기를 내 그분에게 앞으로 점심 시간은 혼자 먹겠다고 조심스레 양해를 구하듯 의견을 전달했다.


 나는 이야기를 하면, 그분께서도 내심 속으로 반가워 하면서 내 의견을 흔쾌히 받아들이실 거라 생각했다. 불편한 건 나뿐만이 아니라 그분도 마찬가지였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결과는 아주 예상 밖이었다. 그분께서 흔쾌히 받아주기는커녕 따로 먹자는 내 의견에 강한 불쾌함을 표시하면서 그날부터 나에게 대놓고 악의적인 적대감을 표시하는 것이 아닌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모르긴 몰라도 그분께서는 그 사건을 계기로 동료 직원들에게 나에 대한 말도 안되는 뒷담화도 쉴새없이 하고 다녔던 것 같다.


 정당히 쉬어야할 휴게 시간인 점심 시간에 굽신굽신 양해까지 구해가면서 내 시간를 가지고 싶다고 말했을 뿐인데, 졸지에 예의 없고, 사회성 없고, 배려심 없는 이상한 사람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날 이후 나는 적어도 공무원 조직 안에 있을 때만큼은 아무리 누군가와의 점심 식사가 불편하게 느껴진다고 하더라도 절대 '나 혼자 먹겠다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동사무소 시절 경험했던 그 사건의 후폭풍이 몇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머릿 속에 뚜렷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점심 시간에 동료들과 식사를 함께 하는 게 맞는 것인지, 따로 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정해진 옳고 그름 같은 것은 애당초 존재하지도 않을 것이다.


 신규 공무원이냐 고참급 공무원이냐에 따라, 개인의 성향에 따라, 함께 일하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따라, 점심 식사에 대한 그 옳고 그름은 매번 자연스레 바뀐다.


 나 역시도 동료들과 함께 화기애애하게 식사를 하며 조직 내 일원으로서 소속감을 느끼고 즐거움을 느낀 것 역시 여러번이다.


 하지만 단지 점심 시간을 자기 개인을 위해 쓰고 싶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무언의, 유언의 비난과 압박을 하는 조직 문화를 과연 올바른 것이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을까.


 적어도 이런 근무 외적인 부분에서만큼은 서로의 취향과 의견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직장 문화'가 우리나라에도 하루 빨리 확립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혼술남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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