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느끼지 못하는 것들
나에게만 청구되는 이용료
바로 지난주 금요일 오후. 교육행정직 동기들과 서울 잠실 야구장에서 펼쳐지는 기아와 두산의 프로야구 경기를 보러 갔다.
경기 시작 시간은 18시 30분. 만나서 입장권도 확인하고 이것저것 먹을 것도 사고 해야하니 다같이 경기 시작보다 30분 일찍 잠실 종합운동장역 6번 출구에서 만나기로 했다.
마침 연가였던 나는 오전 중에 집안일과 블로그 작성을 모두 끝내 놓고 거실에 누워 넷플릭스로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헤이트풀 8>을 보고 있다가 4시 반쯤 외출 준비를 마치고 집을 나섰다.
경기도 서쪽 외곽인 우리 집 근처 지하철 역에서 잠실 종합운동역까지는 지하철 역 수가 30개. 환승 횟수는 1번. 예상 소요 시간은 카카오맵 기준 1시간 34분이 걸린다.
다행히 금요일 오후의 지하철엔 평소에 비해 사람이 많지 않았다. 한두 정거장 지나자 금세 자리가 났고 사이드 쪽 자리에 몸을 기대 앉아 가져온 책을 읽으며 묵묵히 30개의 정거장을 지나쳐 왔다.
기대와는 달리 야구 경기는 꽤나 지루했다. 나의 응원팀인 기아 타이거즈는 2002년생 상대 편 젊은 투수의 빠른 공을 전혀 공략하지 못했고, 반대로 상대 팀은 두산 베어스의 타자들은 기아 선발 투수의 공을 배팅공마냥 뻥뻥 때려댔다.
우리 팀의 공격은 매번 금세 끝났다. 반면 상대 팀의 공격은 끝을 모르고 이어졌다. 7회 초, 우리 팀 타자의 잘 맞힌 타구가 상대편 3루수의 호수비에 잡히는 걸 본 직후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근처 호프집으로 향했다.
호프집에서의 2차까지 마치고 난 시간은 밤 11시. 막차 시간까지는 1시간 이상 남았지만 집까지 1시간 30분 이상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안전한 귀가를 위해 평소보다 조금 일찍 자리를 파했다.
우리는 지하철을 타기 위해 다시 잠실 종합운동장역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상쾌한 밤 공기에 늦은 시간이었지만 정신만큼은 또렷했다.
그런데 지하철을 타러 걸어가는 도중 나눈 대화에서 나는 본의 아니게 굉장한 '컬쳐 쇼크'를 받았다. 각자 집에 도착하는 시간 때문이었다.
분명 서울에 사는 그들과 경기도에 사는 나의 집 모두 잠실 종합운동장을 기준으로 20~25km 내외의 비슷한 거리로 떨어져 있었지만,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 시간이 그들의 경우 40분이 채 안걸렸다. 심지어 중간에 환승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9호선 급행을 타고 서북쪽으로 주욱 올라가면 그들의 집과 가까운 지하철 역에 곧바로 도착한다. 서울의 남쪽 끝에서 서쪽 끝으로 이동하는데 고작 40분 만에 갈 수 있다니. 한동안 충격에서 헤어나올 수가 없었다.
반면 우리 집까지 도착하는 데 실제로는 총 2시간이 걸렸다. 중간 환승역에서의 대기시간만 총 20분이 걸렸기에 예상 소요 시간인 1시간 34분에다가 예상치 못한 대기시간 20분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밤 11시에 잠실 종합운동장역 근처의 호프집에서 나온 나는, 꼬박 2시간의 시간을 지하철 안에서 보내고 나서야 다음날 새벽 1시가 되어 사랑하는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나의 보금자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단지 서울이 아닌 경기도에 산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는 청구되지 않은 '2시간의 이동 시간'이 나에게는 청구된 것이다. 고작 하루동안인데도 말이다.
직장이 서울에 있다보니 요즘들어 왜 사람들이 서울에 살고 싶어 하는지, 왜 서울의 구축 아파트가 경기도의 신축 아파트보다 훨씬 비싼지 조금은 알 것 같기도 하다.
서울에서 태어나 평생 서울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이 기분을 결코 알지 못한다. 오직 경기도 외곽에서 태어난 사람들만이 이 기분을 알 수 있다.
대학 시절 등하교를 할 때도, 주말에 홍대나 강남으로 친구들을 만나러 갈 때도, 직장 동기들과 금요일 저녁 맥주 한 잔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나는 꼬박꼬박 내게만 청구되는 '서울로의 이동 시간'이라는 이용료를 묵묵히 지불해 왔다.
열심히 저축하고 돈 벌어서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꼭 '서울 한복판'에서 살아 보고 싶다.
서울 사람들에게는 없는, 경기도 사람인 나에게만 있는 오래된 꿈이다. 조만간 그 꿈을 꼭 이뤄내고 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서울시설공단 사이트(www.sisul.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