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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워라밸이란 무엇일까?

직업에 대한 교행직 공무원의 생각

by 옹기종기


내가 처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로 마음먹었던 시절, '취업'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건 무엇보다도 '워라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 성향상 회사에 들어가 야근을 하며 인맥을 쌓고, 커리어를 늘려가는 것은 절대적으로 불가능해보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왠지 칼퇴근이 가능할 것 같고, 연봉이 적은만큼 적은 일만 하고 내 시간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던 '공무원'을 내 진로로 선택했다. 다행히도 우여곡절 끝에 합격을 했지만, 그 결과는 이 공간의 여러 글에 걸쳐 쓴 것처럼 '대실패'였다. 나는 워라밸의 'ㄹ'자도 경험하지 못한 채, '워'만 하다가 2년 반의 일행직 경력을 마감했다.


이처럼 일행직 공무원 시절부터 지금의 교행직 공무원 시절까지, 직장 생활 내내 단 한순간도 '워라밸'에 대한 고민을 게을리하지 않았던 입장에서, 오늘은 '진정한 워라밸이란 무엇일까'에 대한 내 생각을 경험에 빗대어 한번 이야기해볼까한다.


다들 기본적으로 워라밸이 갖춰진 직장이라하면 퇴근 시간이 빠르고, 주말 휴식이 보장되며, 업무 강도가 높지 않은 직장이라고 입모아 이야기한다.

하지만 아무리 정시 퇴근이 가능할지라도, 근무 시간동안 처리하는 일들이 내 성향에 맞지 않는다면 그 직장을 내게 있어 '워라밸 직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반대로 아무리 야근을 하더라도 내가 처리하는 업무가 내 성향에 잘맞고, 남아서 일하는 게 그렇게 힘들지 않은 직장이라면 그 직장을 워라밸이 망가진 직장이라 할 수 있을까?


내 경우를 예시로 들자면 나는 일반행정 시절에 당장 써내야할 계획서가 아무리 많이 쌓여 있어도, 처리해야할 회계업무가 아무리 복잡해도, 그렇게까지 스트레스를 받진 않았었다.

계획서는 밤을 새워서라도 만들면 되었고, 회계 업무는 아무리 복잡해도 법령을 보고 지침을 보고 매뉴얼을 찾아가며 논리에 맞게만 잘 처리하면 문제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래도 이런 태도가 가능했던 건, 아무리 시간이 많이 걸려도 내가 집중해서 잘 처리만 하면 '언젠간 끝이 있을거란 계산'이 가능했기 때문이리라.


하지만 업무에 있어 '민원'이 얽히면 얘기가 달라졌다. 구청에서 과서무로 있을 때, 부서 사정상 서무회계+민원+고유사업까지 세 방향의 업무를 나혼자 모두 소화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나는 일처리를 잘 하고 있다가도 억지부리고 예의없게 구는 민원인과의 통화 한 번이면 모든 일이 손에 안잡힐정도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화를 참지 못해 동료들이 있는 곳에서 전화통화로 민원인에게 불같이 화를 내기도 했고, 그렇지 않으면 화를 삭이기위해 회사 화장실 한 구석에 가서 답답한 가슴을 연달아 두드리기도 했다. 그만큼 '민원'이라는 존재는 내 '워라밸' 계산에 있어서 남들에 비해 극도의 마이너스로 작용했던 것이다.


이 곳 교행으로 옮긴 이후 1,2월 회계마감 기간에는 일행 시절 했던 야근보다 '더' 많은 시간동안 야근을 했지만, 그렇게 꽤 많은 시간 야근을 하면서도 단 한 순간도 '워라밸'이 망가졌단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딱 떨어지게 회계업무를 마무리 짓고 나면 늦은 저녁 퇴근하는 차 안에서도 흥이 났고, 집에 와서 집안일을 하거나 책을 읽어도 하나도 피곤하지 않았다. 적어도 교행으로 옮기고 난 이후에는 퇴근 시간과는 별개로 '심리적 워라밸'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퇴근 시간, 업무 강도 등만으로 일률적으로 "이 직장은 워라밸이 좋아. 저 직장은 워라밸이 박살났어," 이런 식으로 직장을 평가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고 본다. 누군가에겐 너무 편한 일이 누군가에겐 지옥일 수도 있다. 절대적인 기준은 없다.


많은 공무원들이 '공무원도 못버티면 나가서 무슨 일을 할 수 있겠어?'라는 생각으로 안맞는 조직에서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고 고통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걸 보면, 워라밸 전문가(?)로서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남들이 편하다고 해서 내게도 편한 일이란 보장은 없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지금 내가 있는 그 자리가 불편하고 고통스럽다 느껴지면 남들의 평가에 휘둘리지말고 마음이 가는대로 움직여라. 그 곳엔 의외의 편안함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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