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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04. 2023

공무원과 수박, 그리고 민원인

세 단어의 어이없는 조합

 며칠 전, 전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군 이슈거리가 하나 있었다.


 바로 '수박을 나눠주지 않은 공무원들에 대한 한 민원인의 엄청난 분노.'


 사건의 전말은 이랬다. 한 면사무소에 민원 처리차 방문한 민원인이 담당자의 부재로 인해 사무실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사무실에 있던 공무원들끼리 수박을 꺼내 나눠먹고 있었다.


 당시 민원인은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신에게 공무원들이 당연히 수박 한 쪽 드시라고 권할 줄 알았는데, 아무 말도 없이 공무원들끼리 수박을 다 먹고 치우기까지 하는 것을 보고 매우 큰 분노를 느낀 것이다.


 어찌나 분노의 정도가 강했던지, 해당 민원인이 항의의 의미로 서산시청 홈페이지에 올린 항의글을 보면, '내 자식이 아니라 안심이다.' '저런 것들을 위해 세금을 내고 있구나.' '부모교육이 문제인지 공무원교육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라는 식의 인신공격 의도가 다분한 표현들이 가득하게 들어가 있다.


 다음은 서산시청 자유게시판에 올라가 있는 해당 항의글의 전문이다. 모르긴 몰라도 당시 정말 화가 나시긴 나셨던 것 같다.


사진 출처: 서산시청 자유게시판


 다행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무원들 박봉에 참 고생한다.' 혹은 '공무원을 정말 노예처럼 생각하나보다. 어이가 없다.'라는 식의 반응을 보이며, 해당 항의글을 작성한 민원인에게 일방적인 규탄의 목소리를 보냈다.


 사실 이번 사건은 사건 해석에 대한 의견 충돌이 발생할 여지조차도 없는 너무나도 어이가 없는 사건이다.


 심지어 업무처리도 빠르고 신속하게 끝났다고 하는데, 더이상 뭘 더 해드렸어야 불만이 없을 수 있었던 것일까.


 무려 '고귀하신' 민원인님이 면사무소에 행차했으니, '미천하기 그지 없는' 공무원들은 그저 밝은 웃음과 굽실거리는 몸짓을 하며 민원인님에게 수박까지 대접했어야 아무 문제 없는 것이었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헛웃음이 나오는 사건이다.


 공무원들의 대한 민원인들의 '묻지마 공격'에 대한 보호책이 없기 때문에 우리나라 공무원들은 원래도 민원인들에게 참 친절하게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괜히 이상한 민원인에게 걸려 국민신문고에 답변 달고, 항의 전화에 업무 마비 되고 이런 꼴을 애초에 차단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무조건적인 친절'이 반복되니 몇몇 분들께서는 공무원들이 정말 자기 아래 있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는 상황이 종종 발생하는 것 같다.


 몇 년째 공무원 생활 중이지만, 참 해가 갈수록 이런 어이없는 일들이 더 잦은 빈도로 발생하는 것 같아 진심으로 마음이 아프다.


 왜 공무원들은 아무런 보호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무차별한 인신공격을 온몸으로 감내하기만 해야하는 것일까.


 고작 월에 200만원 남짓한 돈을 받으며, 매일 밤 11시까지 야근해도 처리되지 않는 일들을 묵묵히 처리하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답답하고 억울한 마음에 정말 눈물이 날 지경이다.


 공무원들은 함부로 막 대해도 되는 사람들이라는 심각한 착각 속에 빠져 계신 몇몇 분들께 꼭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공복(公僕)'이라고 해서 공무원이 진짜 여러분의 노예인 것이 아니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일을 하는 것일 뿐, 몇몇 악의에 찬 사람들의 감정 쓰레기통 역할을 하라고 공무원들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제발 좀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글을 쓰면서 계속 수박 수박거리니 문득 오랜만에 시원한 수박 한 조각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은 마트에 가서 수박 한 통 사다가 와이프와 나눠 먹어야겠다.


 수박 한 조각조차도 눈치 보면서 먹어야 하는 전국의 모든 공무원님들이여. 참 힘든 세상이지만, 오늘도 화이팅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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