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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시생 시절엔 누구나 약해지고 작아진다

마음이 넓어지면 좋은 점

by 옹기종기

가끔 친구들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오면 일상의 스트레스를 한껏 해소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지만, 가끔은 별 의도없이 나에게 던진 친구의 말 한마디가 비수가 되어 내 마음에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아주 오래전 첫번째 공시를 준비할 때 내겐 이런 일이 있었다. 나는 그때 대학을 졸업하고 공시를 시작한지 반 년쯤 됐던 시기였고, 첫 해의 국가직, 지방직, 서울시 3개의 시험을 모두 떨어져 적잖은 충격에 빠져있던 시기였다. 몸무게도 시험 스트레스의 여파로 이전보다 10kg이나 불어있었다.


마침 그 무렵 오랜만에 군대 동기들 간의 모임이 있었다. 난 어차피 나가봐야 할 얘기도 없었고 기껏해야 아무도 관심없는 시험에 낙방한 얘기나 하다올게 불보듯 뻔해서 정말이지 모임에 나가기가 싫었다. 하지만 모임에 계속 불참하면 그 친구들과의 관계가 멀어질까싶어 나는 수험생활로 뚱뚱해진 몸을 억지로 이끌고 모임 장소에 나갔다.


먹음직스런 음식들이 차려진 식당에서 군대 친구들과 나는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오기 전엔 시험 공부하는 내 모습이 초라해보일까 엄청 긴장하고 있었지만 막상 자리에 나와 이야기해보니 마치 다함께 고생하던 이등병 시절로 돌아간듯, 자연스레 이야기가 오고 갔다.


그러다 그 무렵 막 원하던 기업에 취직해 한껏 기세가 올라가 있던 친구 하나가 내게 말을 걸었다.


"어..oo이 요새 공무원 준비한다며?... 그럼 뭐... 행시하는거야? 아니면 7급?..."


말투에서부터 질문의 의도가 감지됐지만, 나는 태연한척 별일 아닌양 대답했다.


"아니, 행시나 7급은 너무 어려울 것 같아서 우리 지역 9급 준비하고 있어."


그러자 그 친구가 입을 비틀어 웃으며 내게 말했다.


"아... 그거 저 뭐냐 ××이도 강화도였나 어디에서 그거 붙어서 다닌다더만...어 그렇구나.. 잘해봐."


나는 그때 그 대답을 듣고 정말 화가 났었다. 참고로 그 xx이란 친구는 내가 있던 군대에서 일도 못하고 성격도 안좋은 고문관 그 자체여서 모든 부대원들이 혹시나 엮일까 피해다니던 부대 내의 유명한 관심병사였기 때문이다.


군대 시절부터 나와 성향이 맞지 않아 여러 차례 부딪혔던 그 친구가 마침 자신은 취업을 했고, 평소에 아니꼬와 보였던 나는 시험에 떨어져서 의기소침해하고 있는 것 같으니, 그 찰나를 못 참고 모임에서 내게 모욕을 준 것이었다.

그 친구의 말 한마디에 졸지에 나는 관심병사였던 xx이도 쉽게 붙어 다니고 있는 직장을 못붙어서 찌질대고 있는 사람이 되어있었다.


최종적으로 시험에 합격해서 일행직 공무원으로 직장을 다닐때도 그 친구의 그 한마디가 컨디션이 안좋을 때면 불쑥불쑥 떠올랐다. 정말이지 그 친구가 불행해지길 바랐고, 다니던 직장에서 해고되길 바랄 정도였다.


그런데 몇 년의 시간이 지나고, 또 내가 직장에서 여러 일을 겪고, 면직을 하고, 직장을 옮기고 여러 삶의 부침들을 겪다보니 어느덧 그 친구와의 일이 기억에서 잊혀져갔고 그만큼 그 친구에 대한 증오의 마음도 점차 사라져갔다.


지금 이 곳에서 꽤나 내 성향에 맞는 일을 하게 됐고, 나름 이렇게 블로그에 글도 쓰고 할 시간의 워라밸도 갖춰지면서 삶의 밸런스가 맞춰지다보니 이제는 오히려 '아 그 때 그 친구가 어떻게 보면 잘 알지 못하는 공무원시험에 대해 나와 최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다보니 의도치않게 ××이 얘기까지 하게 된거구나...' 라는 생각까지 들게 되었다.

그 친구와의 일화에서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지만 몇 년 사이 내게 여유가 생기니 한 때 정말 불쾌했던 에피소드도 별일 아닌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고의 복수는 그저 잊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어떻게 보면 몇 년 전 그 친구와의 일화에서 잘못한 건 그 친구가 아니라 열등감에 휩싸여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고깝게 받아들였던 내 자신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주변에서 내게 무슨 말을 하든 기분 좋은 말은 오래 기억하고, 기분 나쁠 이야기는 의미를 두지 않는 초능력이 생긴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에서 단 1g의 중요도도 가지지 않는 사람들의 지나치는 말 한마디에 내 소중한 삶을 해치지 않도록 이 마음의 평안을 오랫동안 유지하며 살아가야겠다...: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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