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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 벤치에 앉아 조용히 책을 읽다

출근길 환승역 이야기

by 옹기종기

지하철로 출퇴근을 하기 시작하면서 나는 매일 같이 서울의 한 환승역에서 다른 호선으로 환승을 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는 분들은 모두 아시겠지만, 출근 시간의 환승역은 말로 설명할 수 없을 정도로 북적거린다.


사무실로 출근하는 직장인들, 1교시 강의를 들으러 가는 대학생들, 나들이를 가는 어르신들, 그리고 다른 여러가지 이유로 지하철을 타는 많은 사람들까지. 제각각의 차림과 표정을 한 사람들이 환승역에 우르르 내린다.


말 한 마디 없는 그곳에는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질서 같은 것이 존재한다. 수천 명에 이르는 사람들이 다리 한 번 걸리지 않고 서로가 원하는 방향을 향해 가는 걸 보고 있으면 참으로 '숭고하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그런데 몇 달 전부터 신사분 한 분의 모습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밝은 색 셔츠에 베이지 색 바지를 입고 전형적인 직장인의 모습을 한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는 지하철 앞의 벤치에 앉아 지나가는 사람들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두꺼운 책을 읽고 계셨다.


처음엔 하루 이틀 저러시다 안보이겠지 했는데, 벌써 6개월에 가까운 시간동안 내가 그 환승역에 내릴 때면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그 신사분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다.


저 분은 무슨 일을 하시는 분이시기에 늘 이 시간이면 저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시는 걸까.


생각해보면 불과 10년, 20년 전만 해도 지하철이나 버스에서 책을 읽고 신문을 읽는 것은 당연한 풍경으로 보였던 것 같다.


그런데 스마트폰의 보급과 동시에 빠른 속도로 지하철에서 책을 읽는 사람들의 모습은 사라져 갔다.


아침 출근길에 핸드폰을 보고 있는 사람과 책을 보고 있는 사람의 수를 비율로 나눠보자면 이젠 9대 1도 아니고 99대 1쯤이나 될까.


아무리 사람이 붐비는 지하철 칸에 타고 있다하더라도 책을 읽고 있는 사람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다.


아마도 그랬기 때문에 환승역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계신 그 신사분의 모습이 내게 인상적으로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핸드폰을 보는 것은 좋지 않은 행동이고, 책을 읽는 것은 바람직한 행동이라는 식으로 사람들의 행동을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는 없을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 우리는 책과 신문에서 얻던 지식과 정보들을 인터넷과 핸드폰을 통해 접하고 있다.


하지만 핸드폰을 보며 쉴새없이 걸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지하철 벤치에 고요히 앉아 책을 읽고 있는 그 신사분의 모습에선 평범한 사람들에게서는 조금씩 지워져갔던 '여유와 편안함' 같은 것이 물씬 느껴졌다.


그 여유와 편안함을 잊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핸드폰과 컴퓨터로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도 굳이 '책'을 꺼내 읽어야 필요가 있는 것은 아닐까.


내일 출근길엔 그동안 사놓고 읽지 않았던 책 한 권을 꺼내 출근길에 나서야겠다.


내일도 또 그 다음 날도 환승역 벤치에서 책을 읽고 계신 그 신사분이 계속 그 자리에 앉아 계셨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pixabay 무료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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