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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16. 2023

팀장님, 죄송하지만 저 퇴근 했는데요?

근무 시간 외 업무 지시 논란에 대해서

 전쟁 같은 일과 시간을 마치고 맞이한 오후 6시. 슬슬 눈치를 보니 오늘은 팀장도 별 일이 없는 것 같다.


 아직 할 일이 남은 척, 밍기적대며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으니 마침 차석 주무관이 팀장에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을 나선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 빠르게 "고생하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차석 주무관을 따라 사무실 밖으로 나선다.


 오늘은 타이밍 좋게 잘 나온 것 같다. 오랜만의 이른 퇴근에 기분이 좋다.


 퇴근 후 2시간이 지난 저녁 8시. 기분 좋게 저녁 식사를 하고 소파에 누워서 티비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핸드폰이 격렬한 소리로 울려댄다.


 '이 시간에 연락할 사람이 없는데?'


 불안한 마음을 가지고 핸드폰을 가지러 방으로 들어간다.


 핸드폰을 들어 화면을 보니 아니나 다를까, 팀장 전화다. 순간 받을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후폭풍이 두려워 마지못해 받는다.


 당장 다음날 오전까지 제출해야 될 자료가 생겼다고 한다.


 이미 퇴근한 직원에게 업무 지시를 하는 팀장의 목소리엔 미안한 기색이라고는 1%도 찾아볼 수가 없다.


 되려 팀장인 자신이 남아 있는데 먼저 '예의 없이' 칼퇴근한 부하 직원에 대한 질책마저 느껴진다.


 억지로 짜낸 웃음으로 팀장과의 통화를 마무리하고 나니 이미 오늘 하루가 다 지나간 느낌이다.


사진 출처: Tvn 드라마 <미생>


 요즘 직장인들 사이에서 '퇴근 후 업무 지시'에 대한 논쟁이 뜨겁다. 기성 세대는 회사 일이 급하면 연락할 수도 있는 거지 뭘 대단한 거냐며 퇴근 후 업무 지시를 여전히 당연하다는 듯이 여기고, 소위 MZ 세대라 불리는 젊은 세대들은 업무 지시의 내용을 떠나 퇴근 후의 시간에 회사와 관련된 그 어떠한 연락도 받고 싶지 않아 한다.


 첨예하게 대립되는 이 두 가지 의견 중, 어떤 것이 더 정답에 가까운 의견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직장인'으로서 우리의 사생활을 어디까지 양보해야 하는 것일까.


 사실 50대 50의 의견이 존재하는 것처럼 본론을 시작했지만, 개인적으로는 '퇴근 후 업무 지시'는 정말 미친듯이 위태롭거나 중요한 일이 아니라면, 절대 행해져서는 안될 '죄악과도 같은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직장인들은 이미 생존을 위해 하루에 9시간, 일주일에 45시간이 넘는 시간을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을 뒤로 한채, 회사에 나가 바치고 돌아온다.


 그리고 그 안에서 우리는 굴욕감, 모멸감, 박탈감, 패배감 등 온갖 부정적인 감정을 묵묵히 견뎌낸 후에야 비로소 사랑하는 가족과 연인이 있는 보금자리로 귀환할 수 있다.


 그런데 퇴근 후에 울리는 직장 상사의 '따르릉~' 전화 벨소리는 겨우 따뜻한 보금자리로 돌아온 우리를 한순간에 전쟁터와 같은 사무실 한복판으로 소환해버린다.


 세상에 이보다 간단한 괴롭힘 방법이 또 어디 있을까. 핸드폰 버튼 한 번만 누르면 치열한 전투 끝에 겨우 살아 돌아온 병사를 또다시 전쟁터의 한복판으로 내몰아버릴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이 퇴근 후 업무 지시를 그 어떤 갑질보다도 심각한 갑질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고쳐야 할 우리 사회의 끔찍한 병폐 중 하나다.


 다행히도 최근 몇년 사이에는 '직장과 사생활의 엄격한 구분'에 대한 전 사회적인 논의가 활발해지면서, '연결 되지 않을 권리' '카톡 금지법 제정' 등 퇴근 후 업무 지시 방지에 대한 강도 높은 해결책이 국회와 지자체를 중심으로 조금씩 강구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전 사회적으로 논의 되고 있는 이 사항들이 단순한 논의에만 그치지 않고, 적은 월급에도 최선을 다해 일하는 수많은 대한민국의 직장인들을 위해 하루 빨리 현실화 되었으면 좋겠다.


 직장과 사생활의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는 이상,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얼굴에 연기가 아닌, 진정으로 행복한 미소가 피어날 날은 앞으로도 영원히 없을 것이다.


 '우리가 회사 일에 최선을 다하는 만큼, 우리는 회사로부터 우리의 사생활을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오랜 직장 생활을 해오신 분이든, 이제 막 직장생활을 시작하는 분이든, 모두가 제발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SBS 드라마 <발리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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