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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17. 2023

네시 반 퇴근인데 왜 행복하지가 않지

출근하고 싶은 직장은 정녕 없는 것인가

 '나우리회'라는 교육행정직 커뮤니티가 있다. 다음에 개설된 카페인데 전국의 수많은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이 이곳에 모여 업무에 대한 논의를 하고 자신들의 고충에 대해 털어 놓는다.


 나는 일반행정직 공무원으로 구청에 근무하던 시절, 심심할 때 가끔 이곳에 들어가 교육행정직 공무원들의 일상을 들여다 보곤 했었다.


 업무 관련 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없는 게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내가 주로 보는 글은 교육행정직 생활에 대한 현직 주무관들의 푸념 글들이었다.


 물론 심각해 보이는 고민 토로도 많았지만, 당시 구청 공무원의 입장에서 본 교행직 공무원들의 고민 거리는 대부분이 그저 투정에 지나지 않아 보였다.


 '행정실에 또래가 없어서 외로워요.' , '교사들이 무시하는 것 같아서 자존심이 상해요.' , '조직의 주류이고 싶어요.', '초과 근무를 못해서 월급이 너무 적어요.' , '제대로 된 업무를 하고 싶어요.' 등등.


 매일 같이 야근을 하고 민원인에게 욕을 얻어 먹고 중요치도 않은 의전 챙기기에 온 사활을 다 걸어야 했던 당시의 나로서는 속으로 저런 글들을 보면서, '와 얼마나 일이 없고 심심하면 저런 고민을 할까?' 라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었었다.


 단 일주일만이라도 자리를 바꿔 일해보고 싶었다. 저들이 저렇게 고충을 토로하는 것은 옳지 못한 행동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내가 막상 교육행정직 공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으니, 저들이 했던 고민이 어떤 성격의 것이었는지를 이제야 조금은 알 것 같다.


 아무리 일이 편하고 퇴근 시간이 빨라도 이곳에도 역시 직장인이라면 응당 견뎌내야 할 만큼의 스트레스가 존재한다.


 처음에 이곳에 들어올 때만 해도 직장에서 그 누가 나를 짜증나게 하고 열받게 하더라도 '네시 반' 퇴근만 할 수 있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을 줄 알았는데, 막상 네시 반 퇴근을 하는데도 여전히 그렇게 행복하지가 않다.


 왜 일도 수월하고, 퇴근 시간도 빠르고, 월급도 그대로인데 여전히 일하기 싫고, 출근하기 싫고,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만 드는 걸까.


 난 직장에 맞지 않는 사람인 걸까. 아니면 애초에 모든 사람들이 다 이런 감정을 이겨내고 직장 생활을 해나가고 있는 걸까.


 뭐가 문제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돈을 어마어마하게 벌어서 단 몇 년이라도 빨리 퇴직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지금의 이 답답함과 지리멸렬함에 지독한 염증을 느끼고 있는 나는, 내년 1월 발령 때 아마 처음 이곳에 발을 디뎠을 때는 죽어도 가고 싶지 않다고 했던 지원청 자리를 1지망 발령지로 써서 제출할 것 같다.


 만약 지원청에 가게 된다면 대충 어떤 종류의 스트레스가 나를 덮쳐 올지 조금은 예상이 가지만, 지금은 그 스트레스를 어느정도 감내하고서라도 내가 현재 머물러 있는 환경을 벗어나 보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앞으로 2년의 시간이 또 지나 야근과 민원과 상명하복 문화를 겪고 난 후에 맞이 하는 행정실 근무는 지금보다 조금 더 소중하게 느껴질 수 있을까.


 직장이 내 일상을 짓누르지 않는, 그런 세상에서 적어도 한 번쯤은 꼭 살아보고 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Tvn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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