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도 살 만한 이유
이동진의 파이아키아를 보고
요즘 한창 빠져 시간날 때마다 틀어 놓고 보는 유튜브 채널이 하나 있다. 바로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이 진행하는 채널인 <이동진의 파이아키아>.
이 채널엔 이동진 님의 전문 분야가 영화인 만큼 영화 소개 혹은 영화 해석과 관련된 영상이 많이 올라온다.
나는 영화 영상보다는 가끔씩 업로드 되는 '교양이 집사'라는 꼭지를 즐겨 보는데, 해당 꼭지에서는 주로 이동진 님께서 선정해오신 역사, 철학, 문화, 정치 등 흥미로운 인문학적 주제들을 중심으로 방송이 진행된다.
평소 관심은 있지만 혼자 이해하기엔 어려웠던 여러 지식들을 이동진 님께서 위트 있는 말솜씨로 일상적이면서도 심도 깊게 풀어 내주어,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공부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어 시간이 날 때마다 '죄책감 없이(?)' 해당 영상을 재밌게 시청하는 중이다.
사실 이동진 님은 내가 중학생 시절이던 2000년대 중반부터 이미 대중적으로 아주 유명하신 분이었다.
당시에도 트레이드 마크인 빨간 안경을 쓰고 티비와 라디오를 넘나들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영화 평론을 하셨었는데, 요즘 들어 이분께서 온갖 인문학적 이야기들을 막힘 없이 술술 풀어내는 걸 보고 있으니, 괜히 20년이 넘는 시간동안 '영화 평론계의 아이돌'로 불리며 살아왔던 게 아니었구나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뜬금 없게도 이분이 활약하는 것을 보고 있으니, 요즘 유행하는 표현 하나가 머릿속에 떠올랐다. 바로 '문송합니다.'라는 표현이다.
말 그대로 문과 출신이라서 사회에 도움이 되는 생산적인 일을 해내지도 못하고, 취직도 괜찮은 곳에 하지 못하고, 많은 돈을 벌지도 못해 사람들에게 면목이 없다는 의미로 문과생들이 자조적으로 사용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나도 공무원으로서의 생활이 지리멸렬하게 느껴질 때, 혹은 이과 출신 친구들이 좋은 회사에 취직해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고 있을 때, '아 내가 문과가 아니라 이과였으면 지금보다 더 잘 풀렸을텐데...'라는 생각에 문과로 진학한 과거의 선택을 가끔씩 후회하고는 한다.
하지만 이동진 님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말솜씨를 보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그저 '핑계'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이동진 님의 <파이아키아>는 지극히 문과적인 컨텐츠를 다루는 채널이다. 과학적, 수학적 이론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문학, 철학, 역사, 정치, 경제, 문화와 같은 문과생들이 죽고 못 사는 주제에 대한 컨텐츠가 대부분이다.
지극히 문과적인 채널임에도 불구하고, 수십 만의 사람들에게 엄청난 양의 지식과 정보와 즐거움을 선사해 준다. 또 그 인기에 힘 입은 조회수의 폭발로 인해 엄청난 크기의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분명 문과는 사회에 도움이 안되는 존재들이라고 사람들이 그렇게 비아냥 댔는데, 이 정도의 긍정적 영향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면, 문과 출신으로서도 이 사회에서 충분히 제 역할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문과 계열 학과를 졸업한 모든 사람들이 이동진 평론가 님 만큼의 방대한 지식과 말솜씨를 가지고 있지는 못할 것이다.
실제로 이동진 님은 현재 2만 권의 책을 보유하고 있고, 지금까지 1만 편 이상의 영화를 보셨다고 한다. 일반인은 도저히 범접할 수 없는 수준의 수치다.
하지만 꼭 이동진 님만큼이 아니더라도, 비록 문과일지언정 내가 사랑하고 좋아하는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공부한다면, 적어도 자아실현을 하며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경제적 소득은 얻으며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많은 부분 퇴색 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문과생들의 재능이 필요한 곳들이 너무나도 많이 남아 있다.
우리가 지치지 않고 우리만의 무기를 평소에 조금씩 갈고 닦아 놓는다면, 언젠가는 사회에서 우리를 필요로 하는 목소리를 자연스레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포함한 많은 문과 출신들이 자신의 '문과 전공'을 탓할 것이 아니라, '내가 문과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유튜브 채널 <이동진의 파이아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