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죄
이제는 무슨 일을 해야할까
어제 저녁, 퇴근을 하고 집에 와 아내가 오기를 기다리며 잠깐 누워 있는다는 것이 나도 모르게 완전히 곯아떨어져 버렸다. 비몽사몽 눈을 뜨니 새벽 네 시다. 이렇게 세상 모르고 잠든 건 올해 들어 처음인 것 같다.
오랜만에 새벽 시간에 눈을 떠 고요히 어두운 천장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삶에 대한 이런저런 생각들이 스쳐 지나간다. 과거의 기억들, 현재의 불안들, 미래의 희망들 모두가 눈앞에 떠올랐다가 또 금세 사라진다.
인생이라는 것은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오묘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대학 시절, 별 다른 생각 없이 준비했던 공무원 시험 때문에 나는 공무원이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사랑하는 아내를 만났고, 어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견뎌야할 삶의 무게에 대해서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그 삶의 무게를 견디는 방법에 대해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며 아주 조금씩, 천천히 배워 가고 있다.
좋든 싫든 조금씩 공무원으로서의 삶에 익숙해지고 있다. 아무튼 나를 설명하는 가장 간단한 단어는 이제 '공무원'이 되었다.
그런데 요즘 따라 공무원이라는 직업에 대해 회의감이 많이 든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새벽에 비상근무를 서야하는 아내를 동사무소로 데려다줘야 할 때가 그렇고, 매달 200만 원이 겨우 넘는 봉급을 수령할 때가 그렇고, 어이없는 민원 전화를 받을 때, 잼버리 행사에 아무런 관련도 없는 공무원들을 차출해 화장실 청소를 시켰다는 소식을 들을 때, 교사들이 학부모 민원을 받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행정실에 민원 대응 창구를 만든다는 소식을 들을 때가 그렇다.
딱히 내가 잘못한 건 없는 것 같은데, 시간이 갈수록 힘들어지기만 할 뿐이다. 소위 '현타'라고 하는 감정이 시시때때로 지쳐 있는 나를 찾아온다.
과연 나는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왜 점점 공무원으로서의 내 삶은 불행해지기만 하는 것일까.
돌이켜 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스물 여섯의 내가 바랬던 것은 그저 최소한의 일만 하며 '직장인이 아닌' 퇴근 후의 삶을 오롯이 만끽하고 싶다는 것뿐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비록 봉급이 작지만, 비록 사회적 명예도 없지만, 공무원이라는 직업을 가지기로 마음 먹었고, 얼마 간의 수험 생활 끝에 공무원이 되었다. 별다른 욕심은 없었다. 그저 직장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에 와보니 그때의 그 어설펐던 판단이 30대의 공무원이 된 나를 다른 직장인들보다도 훨씬 더 직장에 얽매여 놓고 있다.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해야한다는 것. 그 자체가 나를 공무원이란 직장에 너무나도 얽매이게 만든다.
가만히 새벽이 밝아오는 천장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내 머릿 속엔 딱 하나의 결론만이 남는다.
'사람은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
자기가 어떤 일을 하고 싶은지 깊이 고민해보지 않고 장래를 결정한 사람에게는 평생에 걸친 고통이 따라오게 마련이다.
나는 지금 아무 생각없이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의 잘못에 대한 지독한 죗값을 치르고 있다.
이제부터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아야 할까.
7년 전 스물 여섯 살이었던 나와는 다르게 내게 주어진 젊음의 시간이 이젠 얼마 남지 않았다.
* 배경 출처: 영화 <초록 물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