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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Nov 02. 2023

공무원에게 민원이란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공무원이라는 직업엔 여러가지 단점이 있다. 20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적은 월급, 상명하복의 수직적인 조직 문화, 잦은 업무 변경, 몇몇에게 집중 되는 살인적인 업무량까지...


 고용 안정이라는 장점 하나 외에는 거의 모든 부분이 단점으로 느껴질 지경이다.


 하지만 앞서 나열한 수많은 단점들 이외에 현직자들이 입을 모아 이야기하는 공무원이란 직업의 최대 단점은 따로 있다.


 바로 '민원'의 존재다.


 공무원의 업무는 사실 민원에서 시작해서 민원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흔하게 접하는 동사무소 공무원들은 하루종일 서류 발급을 하며 민원인들을 상대한다.


 건축과에서도, 청소과에서도, 교통과에서도, 복지과에서도, 경제과에서도, 여러 루트를 통해 들어온 주민들의 민원을 처리하기 위해 하루 종일 인허가를 하고, 사업을 추진하고, 예산을 편성하고, 부서 회의를 하고, 각종 보고서를 작성 한다.


 공무원이라는 존재 자체가 나라의 발전과 국민의 편의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다보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다.


 어찌됐든 구청의 몇몇 행정 부서를 제외하고는 공무원들에게 '민원'이라는 존재는 공직생활 내내 함께 가야할 일종의 '불편한 동반자'와도 같은 존재다.


 좋든 싫든, 공무원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이 민원이란 존재에 무뎌지거나 혹은 친해져야만 한다.


 하지만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민원인들의 '역갑질'로 인해, 공무원들이 민원 상대를 하며 견뎌야 할 고통의 강도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가끔씩 악성 민원과 관련한 엽기적인 사건이 터졌을 때나 가끔씩 공무원들의 악성 민원 스트레스에 대해 이슈화가 될 뿐, 여전히 비정상적인 민원인들에 대한 공무원들의 보호책은 전혀 마련 되지 않고 있다.


 아무리 우리 공무원들이 상냥하고 친절하게 민원을 상대한다 하더라도, 애초에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관공서에 민원을 넣는 사람들을 완전히 막아낼 수는 없다.


 구청에서 일하던 시절,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 것에 불만을 품은 한 민원인이 부서에 찾아와 온갖 난동을 부리고는, 출입문을 나서면서 담당 공무원을 향해 내뱉은 말 한 마디가 아직도 머릿 속에 또렷하게 기억난다.


 "야 너 이름 ○○○이랬지? 내일부터 주구장창 정보공개청구 보낼 거니까 각오 단단히 하고 있어."


 언제부터 국민들의 알권리를 위해 만들어진 정보공개청구라는 제도가 악성 민원인들의 좋은 공격 수단으로 전락해버린 것일까.


 참으로 어이가 없는 협박이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일선의 공무원들은 저 말 한 마디에 꽤나 큰 긴장을 한 채, 다음날을 맞이 해야 한다.


 이렇게 악의적이고, 의도적인 협박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공무원이 그 민원인에게 대응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귀하의 무궁한 발전과 더불어' 정보공개청구 건에 대한 '비공개 결정 통지'를 하는 것뿐이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공조직이 정상화 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첫 번째가 비정상적 악성 민원에 대한 정당한 제재라고 생각한다.


 극소수의 악성 민원들 때문에 너무 많은 시간과 행정력이 낭비 되고 있다. 그 피해는 공무원들을 비롯한 수많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된다.


 그 다음 두 번째가 수직적이고 경직된 부조리한 조직 문화의 개선과 물가 상승률 대비 비현실적일 정도로 낮은 공무원 급여의 정상화다.


 아무리 상사가 힘들게 하고 급여가 쥐꼬리만 해도, 정당한 지위를 가지고 민원인들을 상대할 수 있다면 공무원들이 겪고 있는 고통이 적어도 지금 같이 심각한 수준까지 가지는 않을 것이다.


 동기들 말을 들어보니 요즘 한창 교육청 신규 공무원들에 대한 신규자 교육이 진행 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공직에 있는 동안 과연 가능할까 싶긴 하지만, 연수원에서 신규 공무원들을 상대로 아무 의미 없는 친절 교육이니 CS 교육이니 시키기 전에, 악성 민원인들의 도를 넘은 언어 폭력과 협박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을 보호할 수 있는 방법부터 제발 만들어줬으면 좋겠다.


 상식적인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문제의 본질에 접근한다면 의외로 생각보다 쉽게 꼬인 문제들이 해결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아이 캔 스피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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