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당히' 사는 것의 위험성
동기 누나와 마라톤 풀코스 이야기
지난 주, 연말을 맞이해 오랜만에 대학교 동기 모임이 있었다.
내가 나온 학과는 한 학번당 30명 내외의 아주 작은 규모의 학과였는데, 놀랍게도 이번 연말 모임엔 동기 30명 중 무려 16명이나 참석했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는 이 시점에 절반이 넘는 동기들이 이렇게 한 날, 한 시, 한 자리에 모일 수 있다니.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묘한 벅차오름이 느껴지는 자리였다.
오늘은 그날 동기들과 나눈 대화 중에 재밌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어 한번 이야기해보려 한다.
동기들 중에 서울시청에서 근무 중인 나보다 한 살 많은 누나가 한 명 있다.
그 누나와는 졸업하고 만날 기회가 없어 거의 10년을 못 보고 지내다가 최근 모임에서 몇 번 만나 이야기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무래도 같은 공직에 있어서 그런지 만날 때마다 별 것 아닌 주제에도 꽤나 대화가 잘 통하는 편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지난 여름 모임 때 취미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왠 우연인지, 그 누나의 취미도 나와 마찬가지로 '마라톤'이고, 심지어 주말마다 마라톤 대회에 나가기까지 한다는 것 아닌가.
둘째 가라면 서러운 마라톤 애호가로서 나는 마라톤 이야기가 나오자마자 곧바로 반색을 하며 그 누나에게 마라톤에 대해 이것저것 묻기 시작했다.
"오 대박! 누나 마라톤 언제부터 한 거야? 이번 주말에 나가는 건 몇 킬로야? 하프? 설마 풀?"
"아 나 이번에 나가는 건 10킬로."
"아~ 그럼 최고로 길게 뛴 건 몇 킬로야?"
"아 나는 지금까지 10킬로만 뛰어봤어."
"에이~ 누나 그러면 마라톤 한다고 하면 안 되지. '달리기' 한다고 해야지. 10킬로 미터 달리기."
그러고 두 달이 지나 지난 주 연말 모임이 있었다.
두 달 만에 만난 그 누나는 평소와 별다를 바 없어보였는데, 당당한 표정으로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OO아, 나 니 말 듣고 자존심 상해서 이번에 풀코스 완주해버렸어."
"응? 뭐라고 풀코스를 완주했다고? 갑자기?"
가만히 들으니 그 누나는 지난 두 달 사이에 진짜 풀코스를 완주한 것이다. 그것도 코스가 어렵기로 소문난 춘천 마라톤의 풀코스를 말이다.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 동기들 모두 그 누나가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다는 사실에 눈이 휘둥그레졌고, 한동안 그 누나의 독함(?)과 도전 정신에 대한 끝없는 찬사가 이어졌다.
그 날 당당한 표정으로 풀코스를 완주했다는 그 누나의 얼굴을 보며, 별다른 준비 없이 단 두 달만에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버린 그 누나의 타고난 체력에도 경의를 느꼈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놀라웠던 것은 그 누나가 '풀코스를 뛰어 볼까?'라는 생각을 하고 곧바로 풀코스 마라톤을 신청하고, 참가해서, 완주까지 이뤄냈다는 그 사실 자체였다.
고작 10킬로 미터만 뛰어봤던 사람이 어떻게 하프 마라톤도 아니고 곧바로 풀코스를 신청할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 다시 생각해도 그 용기가 존경스러울 뿐이다.
우리는 조금씩 나이를 먹어갈수록 우리 자신도 모르게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혹은 '현실적'이어야 한다는 이유로 지레 겁을 먹고 낮게 설정된 한계 속에서 적당히 만족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만족스럽지 않은 직장을 다니면서도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하는 것을 두려워 하고, 만족스럽지 않은 생활을 하면서도 획기적인 사업이나 재테크에 도전하길 두려워 한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면서도 혹여 현재 누리고 있는 것들을 놓쳐 버릴까. 생각지도 못한 실패를 겪어 완전히 꺾여 버릴까 하는 두려움에 별다른 도전이나 노력도 하지 않고 지리한 일상을 그저 받아들이고만 있는 것이다.
그러고는 시간이 갈수록 속으로 이렇게 합리화를 한다.
'사실 난 이정도 깜냥밖에 안되는 것 같아. 적당히 만족하면서 살아야지. 이 정도만 해도 꽤나 훌륭하잖아.'
만약 그 누나가 이와 같은 생각으로 자신의 한계를 10킬로 미터 달리기 혹은 하프 마라톤정도로 설정해놓고 그것에서 적당한 만족감만을 느꼈다면, 아마 풀코스 완주라는 어마어마한 성취감을 느낄 기회조차 얻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나는 그 합리화를 가볍게 무시해버리고, 자신감 있게 약간은 무모할 수도 있는 도전을 하여 불과 얼마 전까지의 '익숙했던 자신'을 완전히 뛰어 넘어 버렸다.
어쩌면 우리 삶에 있어 지레 겁을 먹고 자신의 한계를 설정한 채로 살아 간다는 것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무리한 도전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리스크 있는 행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동안 나는 안전하고 차근히 간다는 그럴듯한 핑계 속에서, 무궁무진한 내 가능성은 완전히 외면한 채, 그저 편안하고 안락하게만 살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며칠 전 그 누나의 당당했던 표정을 보며, 근래에 느껴보지 못한 짙은 부러움을 느낄 수 있었다.
마라톤이 되었든, 직장생활이 되었든, 재테크가 되었든, 인간관계가 되었든, 과거 할 수 있다는 자신감 하나만으로 마라톤 풀코스를 뛰었던 나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서라도 용기 있게, 당당하게, 다시 한번 최선을 다해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 배경 출처: 영화 <페이스메이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