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적이고 당당한 사람이 되는 가장 쉬운 방법
작은 성공에 익숙해지기
누구든 인생을 살다보면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기존의 삶에서 새로운 삶으로 '삶의 방향'이 완전히 전환되는 몇 번의 경험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가령 우리는 유치원과 초등학교 입학을 통해 가족이 전부였던 유아기에서 벗어나 인간은 어쩔 수 없는 '사회적 동물'임을 깨닫게 되고, '생존을 위한 사회성'을 조금씩 배워가기 시작한다.
또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보호받던 학창 시절을 지나 군대나 직장에 들어가게 됨으로써, 약육강식의 현대 사회에서 부모나 학교의 도움이 없이 홀로된 '성인'으로서 살아가야할 방법을 깨지고 구르며 배워가기 시작한다.
이처럼 사회성의 동물이자 적응의 동물인 인간 존재에게 있어, 이러한 '삶의 전환적 태도'는 우리가 냉혹한 현실세계에서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갖춰야할 미덕 혹은 능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나 같은 경우에도 역시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의 '삶의 방향이 바뀌는 계기들'을 지나쳐 왔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처음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또 처음 군대와 직장에 들어갔을 때, 가장 최근에 들어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다시 시험을 쳐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을 때 등이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의 방향을 형성한 대표적인 계기들이었다.
물론 그 모든 시간과 경험들이 내 삶에 골고루 많은 변화를 일으켜줬겠지만, 오늘은 그 중에서도 내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긍정적인 사람으로의 변화'가 일어난 계기에 대해 한번 이야기해볼까한다.
난 이십 대 초반에 김포에 있는 한 공군 기지에서 2년여 간의 군복무를 했다. 내가 있던 부대는 김포시청 바로 뒤에 있는 나지막한 산 중턱에 위치해 있었는데, 산 꼭대기에 있던 레이더 기지를 중심으로 한 바퀴에 약 500m 정도 되는 군사용 도로가 우리 부대를 감싸고 있었다. 그 도로는 우리들이 매일 아침 9시 일과 시간이 시작되면 출근을 하고, 저녁 6시가 되면 생활관으로 퇴근하기 위한 출퇴근길로 사용됐다.
우리 부대에는 특이하게도 이등병 때부터 그 도로를 매일 같이 10바퀴씩 뛰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우리 부대에 전입 온 첫 날부터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일과가 끝난 시간이면 무조건 저녁 식사를 한 이후에 체육복과 운동화를 신고 도로로 뛰쳐나가 미친듯이 땀을 뻘뻘 흘리며 자신이 하루 동안 해야할 '달리기 숙제'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 친구보다 몇 기수 선배였던 나는 어느날 그 친구에게 정말 이해가 안된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물었다.
"oo아, 너 퇴근하고 힘들지도 않냐? 그거 뛰는 거 재미도 없는데 뭘 그렇게 열심히 해. 생활관 와서 티비나 보지."
내 장난섞인 핀잔을 들은 그 친구는 별다른 설명없이 사람 좋은 미소를 지으며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 일병님. 그러지 말고 오늘 퇴근하고 저랑 부대 한 바퀴만 뛰어보시죠."
그 친구의 갑작스런 제안에 나는 마침 퇴근 후에 무료하기도 했고, 또 그 친구와 평소에 못 나누던 사적인 얘기도 좀 나누고 싶단 생각이 들어 별 생각 없이 그 날 퇴근 후에 생활관 앞에서 만나자고 했다.
그 날 저녁 나는 그 친구와 함께 학창 시절 체력검정 이후 처음으로 500m 5바퀴, 그러니까 2.5km의 거리를 뛰어봤다. 그래도 명색이 군대 선임인데, 그 친구에게 지친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미친듯이 차오르는 호흡을 억누르며 애써 힘들지 않은 척을 했지만, 15분 이상을 내리 뛴 내 몸은 이미 굵은 땀으로 흠뻑 젖어있었고 몇 년 동안 쓰지 않았던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은 갑작스런 운동으로 팽팽하게 당겨져 있었다.
반면 그 친구의 얼굴은 이제 막 준비운동이라도 끝낸 듯 너무나도 평온해보였다. 심지어는 이미 지친 나를 빨리 생활관으로 들여 보내고 원래 자신이 뛰어야할 거리를 마저 뛰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나는 그 친구에게 더이상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 나는 이만하면 된 것 같다고 이야기하며 생활관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느리고 답답한 짐덩이(?)를 덜어낸 그 친구는 나에게 "고생하셨습니다!"라고 꿈뻑 인사를 하고는 기다렸다는 듯이 제대로된 혼자만의 달리기를 시작했다.
그 날 저녁, 쏟아지는 노을 빛에 붉게 그을린 채 내 시야에서 빠르게 멀어져 가던 그 친구의 뒷모습이 11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눈 앞에 생생하다.
부끄러워 말은 못했지만 그 순간의 나는 그 친구의 당당한 모습에 완전히 매료됐었고, 또 한 편으론 매일같이 자신이 해야할 일을 꾸준히 해나가는 그 친구의 모습에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지독한 질투와 패배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당시의 나약했던 나는 비록 나보다 어리고 계급도 낮았지만, 당당하고 긍정적인 그 친구의 그 모습을 너무나도 갖고 싶었다.
그 다음 날부터 나는 그 친구를 따라 우리 부대 내 도로를 열심히 뛰었다. 처음부터 같은 거리를 뛰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에 그 친구가 5km를 뛰는 날은 나는 2.5km, 그 친구가 10km를 뛰는 날은 나는 5km. 이렇게 절반씩 함께 뛰고 나머지 절반은 그 친구 혼자 뛰는 식으로 함께 달리기를 진행했다.
처음엔 그 친구의 속도에 맞춰 1km 뛰는 것도 버겁게 느껴지더니 일주일이 지나고 한 달이 지나니 조금씩 기록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내가 중간중간 자신감을 잃고 이젠 달리기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면 그 친구가 지친 내 속도에 맞춰 무슨 일이 있어도 정해진 거리는 완주할 수 있도록 옆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도와주었다.
그렇게 일 년여의 시간이 지나 달리기가 숨쉬는 것보다 익숙해질 무렵, 나는 20~30km씩 되는 꽤나 긴 거리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완주할 수 있을 정도의 체력을 가지게 되었고, 전역을 얼마 남기지 않은 병장 말년 휴가 때는 그 친구와 함께 마라톤 대회에 나가 42.195km의 풀코스를 완주하기도 했다.
나의 오기와 그 친구의 배려를 통해 만들어진 이 '성공의 기억'은 일병에서 병장이 된 1년 반의 시간 동안 나를 나약하기만 했던 사람에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춘 '긍정적이고 당당한 사람'으로 만들어주었다.
이 어린 날의 작은 경험을 통해 나는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을 깨우칠 수 있었다. 바로 자신의 삶에 대해 늘 긍정적이고 당당한 사람들의 모습은 이러한 하루하루의 '작은 성공'들이 모여 이루어졌단 사실을 말이다.
처음부터 마라톤 풀코스를 뛸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다. 다만 내가 단 1km라도 완주를 해서 처음 목표한 바를 이뤘을 때 느끼는 작은 성공의 쾌감들이 쌓이고 쌓여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는 사람의 '성공 DNA'를 배워가게 된다.
그렇게 5km, 10km, 20km 완주에 성공해나가면서, "아 내가 목표한 바를 이룰 수 있는 사람이구나." 라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하면 비단 달리기뿐만 아니라 무슨 일을 하더라도 처음부터 천천히 해나가면 언젠간 그 끝에 다다를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가끔 '실패'가 두려워 아무 시도조차 하지 않으려는 나약한 내 모습을 보게 될 때면 이 시절의 기억을 떠올리며 내 자신에게 이렇게 되뇌인다.
"남들에게 자랑할 수 있는 높은 목표보다는 비록 우스워 보일 지라도 조금의 노력만 들이면 성취할 수 있는 작은 목표를 먼저 설정해 봐라. 그리고 그 '작은 성공'의 기억을 토대로 다음엔 조금 더 높은 목표를 설정하고 그것에 매진해 봐라. 남들의 시선이나 걸리는 시간은 결코 중요치 않다. 그 셀 수 없는 작은 성공들을 반복하다보면 어느새 무슨 일을 하더라도 겁없이 덤비는 긍정적이고 당당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11년 전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오늘의 나 역시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또 하나의 '작은 성공'을 쌓아 가기 위해 내게 주어진 새로운 하루를 힘차게 살아간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