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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Jun 26. 2022

그럼에도 사회생활을 해야하는 이유

내 눈에 보이는 남들의 모습처럼만...

 어린 시절 나에게는 구체적인 꿈이 하나 있었다.


 초등학생 무렵부터 친구들과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는 방 안에 틀어박혀 그림을 그리거나 티비나 보는 걸 좋아했던 나는 내 삶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거추장스러운 사회에서의 모든 인간관계를 끊은 채 경기도 외곽의 허름한 아파트에 살면서 정기적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며 문단에 발표하는 작품으로만 사회와 소통하는 그런 예술가적인 삶을 살고 싶었다.


 아마도 내가 이런 꿈을 가지게 된 데에는 어린 시절 만화나 소설책에서 봤던 괴짜 예술가의 모습에 지나치게 매료된 이유가 컸을 것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내가 단지 미디어에서 가공된 괴짜 예술가들의 모습에 심취했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꿈을 꾸었을 것이라 생각되 않는다.


 분명 그 시절의 나는 내가 앞으로 인간이라는 사회적 동물로서 살아가는 것에 있어, 내가 타고난 성향이 결코 그러한 삶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깨닫고 있었던 것 같다. 그 결과 나는 다른 아이들이 일반적으로 꿈꾸는 대통령이나 과학자, 연예인 같이 사회적 성취를 거둔 사람의 모습보다는, 어느 정도 사회적 관계에서 벗어나 있어도 충분히 생존이 가능한 사람의 모습을 미래의 나의 모습으로 꿈꾸고 갈망하게 됐던 것이다.


 그 꿈은 서른이 넘은 지금의 나이까지도 물론 여전히 유효하다. 학교와 군대, 직장을 거치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사회성으로 인해 어린 시절 느꼈던 관계에 대한 두려움은 많은 부분 해소되었지만, 여전히 직장이나 모임에 나가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고 오면 늘 힘들고 버겁다는 생각이 마음 한 켠에서부터 꾸물꾸물 올라온다. 사람이 아무리 자신을 깎아내고 다듬으려 해도 결국 타고난 본성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이런 피할 수 없는 삶의 지점을 마주할 때마다 뼈아프게 확인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어른이 되어 사회인의 삶을 살아보니, 아무리 내가 사회와 분리된 삶을 살고 싶다고 하더라도 인간이란 존재로 태어난 이상 100% 그런 삶을 영위하기엔 불가능에 가깝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많이 든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에 더해 그동안 당연하다 생각했던 사회적 관계를 싫어하는 내 본성 역시 내가 제대로 파악한 것이 맞는지, 내 스스로에게 종종 의문이 들기까지도 한다.


 구청에서 의원면직 절차를 다 마치고, 2022년 1월 1일 교행직 공무원으로서 지금 있는 학교에 첫 발령을 받을 때까지, 나에게는 실제로 약 1년 3개월 간의 사회적 공백기기 발생했었다.


 그 기간 동안엔 억지로 그 누구와 만나서 밥을 먹을 필요도 없었고, 처리하기 싫은 업무 때문에 직장 동료와 기싸움을 할 필요도 없었다. 그저 그동안 일하면서 모아놨던 몇 천만 원의 돈으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생활하면 족한 상황이었다.


 비록 단기적이지만 내가 어린 시절부터 꿈꿔왔던 경기도 외곽의 아파트에서 아무와 접촉하지 않는 삶을 살 수 있는 황금과도 같은 시간이었던 것이다. 앞서 말한 내 본성대로라면 나는 아무런 걱정도 없이 사회와 완벽히 단절된 그 삶을 잠시나마 충분히 만끽하고 즐겼어야 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의 나는 그 누구보다도 다른 사람들과의 사회적 만남을 갈망하고 그리워했다. 또 서로서로 어울리며 발전해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나 혼자만 고립되는 건 아닐까 매일매일 두려워하고 괴로워했다.


 지방직 시험에 합격하기 전까지는 내세울 게 없어서 기존에 알던 사람들을 만나는 게 꺼려졌지만, 지방직 시험에서 높은 필기 점수를 받고 합격이 거의 확실시 되자, 그동안에 내가 들인 노력과 그에 따른 결과물을 연락이 닿지 않았던 사람들에게 미친듯이 자랑하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들에게 그동안에 내가 겪어왔던 고민들을 털어놓고, 또 앞으로 내가 어떻게 살아갈 지에 대해 왁자지껄 떠들어 대고 싶었다.


 아무리 사회적 관계를 힘들어한다고 해도, 또 천성적으로 사람과 어울리는 걸 힘들어한다고 해도 결국 나 역시도 사회적 인정을 받고 남들과 교류해야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지극히 일반적인 인간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그 당연한 진리를 두 번째 백수이자 공시생으로 지냈던 지난 1년 3개월 간의 경험을 통해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사실 지금까지도 정말 내가 사회적 관계 자체를 싫어하는 것인지, 아니면 남들에 비해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것에 자신이 없어 자기 합리화를 위해 내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관계에 힘들어 하다가도, 또 어떨 땐 관계 속에서 소소한 행복을 찾아내기도 한다.


 하지만 이유야 어찌됐든 간에 사회적 동물 그 자체인 인간으로서 나는 먹고 살기 위해, 내 존재를 인정 받기 위해, 내 가정과 미래를 꾸려나가기 위해 힘들고 어렵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드시 사회 생활을 꼭 해나가야 한다. 이러한 사실에 내 진정한 취향이 어떤 지는 결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없을 것이다.


 가끔 원하지 않는 인간 관계에서 오는 상처를 받고 마음이 괴로울 때면 작년에 오롯이 혼자였던 시기에도 딱히 완벽한 만족감을 느끼지는 못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내가 살아가기 위해선 반드시 사회 생활을 해야한다는 그 태생적으로 주어진 의무 하나에만 충실하려 노력해본다.


 그러한 노력을 통해 적어도 관계에 있어서 만큼은 내 눈에 보이는 남들의 모습처럼 별다른 고민 없이 행동할 수 있게 되 그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좋겠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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