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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희열, 이제는 그를 용서해주고 싶다

유희열 표절에 대한 생각

by 옹기종기

몇 달 전, 유희열의 <아주 사적인 밤>이 류이치 사카모토의 <아쿠아>를 표절했다는 의혹을 시작으로 그가 작곡한 많은 곡들이 표절 의혹으로 인해 뭇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의혹이 제기되는 곡들 중에는 정말 대놓고 표절이 의심되는 곡들도 있었고, 시류에 편승해 유튜브 조회수를 올리기 위한 목적으로 교묘하게 짜깁기하여 비슷하게 들리도록 의도한 곡들도 있었다. 어찌 됐든 간에, 데뷔 이후 30년에 가까운 시간동안 90년대 최고의 천재 작곡가로 불리웠던 유희열이란 아티스트는 이번 표절 논란을 통해 음악인으로서 또 유명인으로서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게 됐다.


고등학생 시절,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집에 와서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인 <성시경의 푸른밤>에서 성시경은 '팬(fan)'이라는 존재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다. "팬이라는 것은 단순히 그 사람의 음악을 좋아하거나, 그 사람의 창작물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이 아니다. 진정한 팬이라는 것은 그 사람 자체에 푹 빠져서 그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하든, 그 사람의 일거수일투족이 궁금하고 종래에는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단계에 이르는 것을 말한다."


내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면 일정 시기에 나는 성시경이 말한 '진정한 팬'의 마음을 유희열에게 느꼈었던 것 같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랑과 인생에 대한 어설픈 고뇌에 빠져 있던 20대 초반 시절에는 토이의 음악과 공연뿐만 아니라 그 음악을 만드는 유희열이란 사람 자체에 너무나도 푹 빠져 있었다. 그가 서울대 작곡과를 나온 것도 멋있어 보였고, 그가 잇몸이 선명하게 드러나는 미소를 띠며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음담패설을 하는 것조차 멋있어 보였다. 유희열이란 사람은 20대 초반의 내가 보기엔 세상의 모든 진리와 슬픔과 아픔, 기쁨을 이미 모두 깨달은 사람 같았다. 토이의 콘서트 영상을 노래 순서를 외울 정도까지 돌려봤고, 그가 나왔던 예능 프로그램이 있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영상을 구해 밤새도록 몇 번이고 돌려 보았다. 몇 달 간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는 정말 '유희열'이란 한 아티스트의 진정한 '팬'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좋아했던 나의 '스타'가 이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의혹에 휩싸여 날개 없는 추락을 계속 하고 있다. 그의 모든 창작물이 표절이란 꼬리표를 달고 본래의 아우라를 잃은 채 분노한 대중들에 의해 갈기갈기 찢겨 가고 있다. 마치 토이의 음악과 함께 했던 나의 어린 날의 추억들이 갈기갈기 찢겨 나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아주 솔직한 마음으로 이제는 그만 했으면 좋겠다. 유희열이란 사람이 큰 잘못을 저지른 것은 분명하지만, 한때 나에게 음악이란 매개체를 통해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기쁨과 위로를 선사했던 그 사람이 이렇게나 궁지로 몰리는 모습을 더이상은 보고 싶지가 않다. 유희열이란 사람에게 배신 당한 모든 팬들도 그가 과거에 우리에게 줬던 아름다웠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그에 대해 조금은 용서하는 마음을 가져 줬으면 좋겠다. 그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을 수 없이 화가 나면서도 나도 모르게 가슴 한켠이 시리게 아파온다.


혹여 우리가 어린 시절 들었던 유희열의 아름다운 음악들이 모두 다른 이의 창작물을 도둑질해 만들어낸 부끄러운 결과물이라 하더라도, 결코 그걸 듣고 느꼈던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들이 하루 아침에 무의미해진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비록 유희열의 많은 음악들이 표절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란 사실을 알게된 이상 다시는 그의 음악을 예전처럼 순수하게 들을 수는 없겠지만, 과거 어린 시절 그의 음악을 들으며 느꼈던 순수하고, 따뜻하고, 민감하고, 날카롭고, 가슴 벅찼던 감정들은 여전히 내 마음 한켠에 선명하게 남아 있다.


한때 그의 팬이었던 한 사람으로서, 적어도 나만큼은, 이제는 그를 용서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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