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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Oct 09. 2022

일 안 하는 공무원 되기,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10년 전쯤, 한 친구에게 들은 재미난 이론이다.


 쉽게 말해, 뛰어난 인재들로만 구성된 조직에서도 약 10~20%의 '없느니만 못한'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고, 반대로 구제불능인 사람들로만 구성된 조직에서도 약 10~20%의 '책임감 있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내용의 이론이다. 당시 나는 군대에서 사고만 치고 다니는 후임 병사 하나 때문에 굉장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는데, 그 친구에게 들은 이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 덕에 잠시나마 마음이 편해졌었던 기억이 있다.


 앞서 말한 이 '또라이 질량 보존의 법칙'처럼 어떤 직장이든 실제로 없는 게 나은 사람들이 구성원 내에 필연적으로 한두 명씩은 존재하기 마련이다. 공무원 조직 역시 마찬가지다. 자의에 의해서든 타의에 의해서든, 일반적으로 최소한의 업무분장만을 부여 받는 그들은, 그 최소한의 업무 분장조차 '갑질''평등'을 운운하며 제대로 수행해내지 '않'거나 혹은 수행해내지 '못'한다. 당연히 그들이 해야할 일은 같은 조직의 동료 구성원들에게 고스란히 흩어지고, 동료들은 그들과 같은 부서에서 일한다는 이유만으로 부서 생활 내내 해결되지 않는 지긋지긋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고통 받는다.


 2년 전, 구청에서 매일같이 야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나는 늘 이런 생각을 했었다.


 '나도 태생적으로 그들과 같은 사람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도 한없이 뻔뻔하고 한없이 무책임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왜 난 흉내 내려 해도 안되는 걸까. 왜 난 지금 알량한 책임감으로 별 중요하지도 않은 일에 이토록 매달리고 있어야 하는 걸까.'


 그 당시를 되돌이켜 보면 나는 참 남들처럼 그렇게 뻔뻔하게 혹은 못나게 하지 못하는 내 타고난 성향에 대해 그 누구보다도 화가 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내 주변에 있는 몇몇 사람들처럼 못하겠다고 앞뒤 안가리고 떼도 써보고, 이유없이 울어도 보고, 뜬금없이 화도 내보고 할 수 있는 '또라이가 될 능력'이 있는 사람이었다면, 내 길지 않았던 첫번째 직장 생활이 조금은 더 편안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 섞인 아쉬움이 퇴사 후 얼마 되지 않아 진하게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년의 시간이 지나 당시 내가 했던 고민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니, 참으로 의미 없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집단 안에서 함께 일하는 구성원들에게 '혐오' '멸시'를 받으며 살아가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에 치여 매일 같이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퇴근을 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견디기 힘든 일일 것이다. 조직 내에서 소위 또라이로 취급 받는 이들은 남들이 일상적으로 겪는 업무 스트레스가 없는 대신, 그보다 더한 동료들의 혐오와 멸시를 오로지 혼자만의 힘으로 견뎌내야만 한다.


 또한 아무리 노력한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결코 '직장에서의 나''직장이 아닌 곳에서의 내'가 완전히 유리된 채 살아갈 수는 없는 존재들이다. 우리는 직장에서 배운 인내와 성취를 바탕으로 자신을 성찰하고, 조금씩 성장하며 완전한 어른으로서의 삶을 만들어 나간다. 일반적인 직장 생활의 과정을 통해 남들이 조금씩 어른으로 성장해나갈 때, 또라이로 치부되는 그들은 더 초라해지는 법만을 배우며 조금씩 그저 늙어갈 뿐이다.


 몇 년 전 그들의 뻔뻔함을 부러워했던 나는 이 눈에 보이지 않던 그들만의 고통들을 완전히 간과한 채,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제 직장 생활을 하는 중에 아무리 힘든 일이 있더라도, 적어도 일 안하는 '또라이 같은 공무원'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오히려 조금 더 능력 있고 강인한 사람이 되어 그들이 주는 스트레스에 의연하게 대처하자는 다짐만을 반복해서 할 뿐이다. 다시 한번 직장을 그만둘 지언정, 내 인생에 단 한순간이라도 또라이로 살아가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그들의 고통을 떠올려보며 더욱더 확고해졌기 때문이다.


 정상인이 되었든, 또라이가 되었든 직장 생활을 하며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스트레스를 감내해야만 한다면, 내 인생에 조금이라도 도움되고 가치 있는 스트레스를 받아 들이는 게 훨씬 현명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공무원 조직 내 모든 또라이들이 이 글을 읽고 잘못된 생각을 바꾸길 기원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해본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배경출처: TVN 8주년 드라마 <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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