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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옹기종기 Oct 23. 2022

국문과 졸업 후, 공무원이 되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문과형 인간'으로 살아가기

 얼마 전 우연히 한 포털 사이트에서 최근 고교생들의 '이과 선호 현상'이 눈에 띄게 두드러지고 있다는 내용이 담긴 기획 기사를 하나 읽었다. 불과 십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문과와 이과 중 문과로 진학하는 고교생들의 비중이 6 대 4 정도로 더 높았었는데, 요 몇 년 간 이어진 문과 계통의 취업난으로 인하여 이제는 이과를 선택하는 고교생들의 비중이 오히려 7 대 3으로 완전히 역전 되어 문과생들이 설 자리가 점점 더 좁아지고 있다는 것이 해당 기사의 주요 내용이었다.


 기사에서 다루고 있는 것처럼 요 몇 년 사이 '문과형 인재'들에 대한 사회 전반의 시선이 너무나도 차가워졌다. 효율성과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기업들은 이제는 더이상 '생산성은 없고 불만만 많은' 문과형 인재들을 채용하지 않는다. 문과형 인재들의 전유물이라 여겨졌던 마케팅, 인사, 재무 등과 같은 직무마저도 이제는 '인문학적 소양'을 갖춘 '이과형 인재'들에게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문과생들을 조롱하는 '문송하다'는 표현이 '밈(meme)'화 되어 TV, 인터넷, 신문 등 여러 매체에서 거리낌 없이 사용되고 있다. 어느새 문과로 진학한 학생들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에 상관 없이 그저 수학을 잘하는 이과생들을 피해 문과로 도망간 '패배자'들로 전락해 버렸다.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을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나 역시 인문계 고등학교를 나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을 전공하고, 현재 문과생들의 최후의 보루라는 공무원이란 직업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문과형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이러한 문과생들의 몰락이 마냥 남일 같이 느껴지지만은 않는다.


 사실 뒤돌이켜 생각해보면 내가 중고등학생이던 시절, 문과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가 이과로 진학하는 학생들의 수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아 학생들의 '이과 기피 현상'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던 그 시절에도 단지 '취업'을 위해서는 무조건 이과를 가는 것이 유리하다는 것은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다만 그 시절에는 지금처럼 문과생들의 취업길이 이토록 박살 나 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문이과에 상관없이 무조건 좋은 수능 점수를 받아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을 가는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학생 개개인의 적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문과와 이과가 마치 2부 리그와 1부 리그의 관계처럼 치부되던 시기는 결코 아니었다. 수학에 탁월한 친구들은 국어와 영어에 탁월한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반대로 국어와 영어에 탁월한 친구들은 수학에 탁월한 친구들을 부러워했다. 지금과는 달리 사회적으로도 문과와 이과를 모두 존중하던 시절이었다.


 비록 나 역시도 대학 시절 내내 공부했던 전공을 살리지 못한 채 돌고 돌아 공무원이라는 전공 학문과는 전혀 상관 없는 직업을 가진 채 살아가고 있지만, 내가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배웠던 여러 지식들이 나의 삶에, 더 나아가 우리 모두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생각해본 적은 결코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래서 요즘 누구보다도 총명하고 성실한 '문과형 인재'들이 단지 취업이 안된다는 이유로, 단지 돈을 많이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 충분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이들과 자기 자신을 비교하며 기(氣)가 푹 눌린 채로 살아가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참으로 마음이 안타깝다. 그들이 못나거나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단지 사회가 그들을 품어줄 준비가 안된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문과 쪽 학문을 전공하는 대학생들이 자조적으로 말하듯, 문과생들의 최종 진로가 결국 자신들의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그저 '공무원' 하나 뿐일라도, 어설프게 이과생들의 모습을 따라하는 '이과생 코스프레'를 하기보다는 내가 평소에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것에 일단 최선을 다 해보는 '당당한 문과생'이 되는 것이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훨씬 더 현명한 선택이 되지 않을까.


 어렸을 때부터 국어와 사회, 정치, 경제, 역사, 문화를 사랑하고 인문계고와 인문대학을 나와 공무원이 된 이 시대의 전형적인 문과형 인간의 한 사람으로서, 지금도 작은 독서실에 갇혀 자신과의 싸움을 하고 있을 수많은 '문과형 인재'들에게, 지금 가고 있는 그 길이 결코 틀리지 않았음을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반복해서 말해주고 싶다.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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