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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강에 못가면, 실패한 월드컵이야?

카타르로 향한 국가대표팀 선수들을 응원하며

by 옹기종기

우리나라엔 4대 프로 스포츠가 있다.


축구, 야구, 농구, 배구.


나는 이중에서 어린 시절부터 야구와 농구를 유독 좋아했었다.


지금은 좀 지난 이야기지만, 한창 야구와 농구에 매료 되어 있던 시기에는 응원팀이었던 기아 타이거즈를 응원하기 위해 연고도 없는 광주까지 원정 응원을 다녀오기도 했었고,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프로 농구 팀인 인천 전자랜드가 처음으로 챔피언 결정전에 진출했을 때에는 전자랜드의 홈구장인 삼산체육관에 여자친구와 함께 찾아가 목이 터져라 '전자랜드~! 전자랜드~!'를 외쳐대기도 했었다.


승패를 떠나 야구 자체를 즐기시는 분들 :D


반면, 축구에 대해선 좀 애매했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축구라는 스포츠는 선수 개개인의 능력치가 야구처럼 치밀하게 분석되어 극단의 수싸움을 하는 재미가 있는 것 같지도 않았고, 반대로 농구의 덩크슛과 3점슛처럼 묘기에 가까운 볼거리가 제공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어린 시절의 내가 보기에 축구라는 스포츠는 90분 내내 빙빙 공을 돌리다가 어쩌다 한 번 '운빨'로 골이 들어간 팀이 이기는 '그저 그런' 스포츠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얼마나 답답할까? 몸도 마음도


그런데 역시나 '월드컵 시즌'이 되니, 나 역시도 마치 오랜 시절 축구팬이었던 것마냥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나도 모르게 솟구쳐 오른다.


손흥민의 눈 부상에 내 눈이 다친 것처럼 마음이 무겁고, 호날두가 일으키는 각종 논란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미소가 지어진다.


비록 월드컵 기간 동안만이지만 국가대표 축구에 있어서 만큼은 모두가 진심인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나 역시도 잠시 동안 대한민국 국가 대표팀의 '열렬한 팬'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늘 월드컵 시즌이 되어 축구에 대한 기사가 왕창 쏟아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집안에 앉아 치킨이나 뜯으면서 축구와 월드컵을 '소비'하는 우리들과는 다르게, 그 축제의 한 복판에서 5천만 국민들의 기대를 온몸으로 짊어지고 경기에 나서야 하는 선수들의 부담감은 과연 어느 정도일까라는 생각이 든다.


그 압박감을 이겨내고 골든골을 넣은 안정환


2002년 4강 신화의 주역인 축구 선수 안정환은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16강 이탈리아 전에서 패널티킥을 실축했을 때,


'아 이제 한국에선 못살겠네. 어디로 이민가야하지?'


라는 생각만이 경기 내내 계속 들었었다고 출연진들 앞에서 사뭇 진지한 태도로 고백했다.


이미 최고의 결과를 냈고, 월드컵 이후 최고의 스포츠 스타가 된 사람이, 십수년도 더 지난 일을 회상하면서도 그 당시의 아찔한 심경을 숨기지 못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전 국민을 대표해 월드컵이란 세계 최고의 무대에 출전하는 우리 국가대표팀 선수들의 부담감이, 과연 어느 정도일지 조금은 짐작이 되는 것 같기도 하다.


믿기지 않는 2002년의 추억


진정으로 축구를 즐길 줄 알고, 진정으로 이번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대한민국 대표팀의 선전을 바라는 축구팬이라면, 결코 대표팀의 16강 진출 여부에 따라 이번 월드컵을 '성공한 월드컵' 혹은 '실패한 월드컵' 이런 식으로 이분화시키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카타르로 향한 26명의 선수들 중 대한민국과 자신의 활약을 바라지 않는 선수가 누가 있으랴.


비록 힘들고 부담스럽고 고달픈 무대겠지만,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26명의 대표팀 선수들이 결과에 상관없이 그저 자신들이 평생동안 갈고 닦아온 기량을 월드컵 무대에서 후회없이 마음껏 펼쳐 보인 후에, 당당하게 웃는 얼굴을 한 채, 한 달 후 한국으로 돌아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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