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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꿈꾸는연필 Nov 02. 2022

나는 가끔 시금치가 싫어진다

나는 시금치를 다듬는다.

나는 가끔 시금치가 싫어진다.




"걔는 애한테 정이 없나 봐."

어머니가 경주여행 중 남편에게 한 말이다. 아무리 모성 없는 엄마라고 해도, 이런 말을 전해 들으면 기분이 상한다. 그러나 남편은 둔하다. 내 마음에 생길 생채기까지 염두에 둘 만큼 배려심이 깊지 않다. 그랬다면 어머니께 들은 이 말, "걔는 애한테 정이 없나 봐"를 나에게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어머니 역시 배려심이 깊은 편은 아니다. 어머니는 돌이 지나도록 엄지손가락을 빠는 손주를 가리키며 "애정 결핍 아니니?"라는 이야기를 자주 꺼내곤 했었으니까.

어머니와 남편은 비슷하게 둔하다.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상처를 다. 상처를 줬다는 사실조차 모른 채 말이다. 그러니까 두 사람은 착한 사람들이고, 행복한 사람들이다.


경주여행은 순전히 어머니를 위해 계획한 것이었다. 어머니는 오래전 떠나온 고향인 경주를 자주 그리워했다. 그러나 연로하신 어머니 혼자 서울에서 경주까지 가는 건 불가능했다. 나는 남편에게 어머니를 모시고 경주에 한번 다녀오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난 몽이를 간병해야 하니까 셋이서 갔다 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런데 공교롭게도 경주로 떠나기 얼마 전, 몽이가 죽었다. 간병할 강아지는 없었지만, 경주여행에 기꺼이 동행할 만큼 내 마음은 가볍지 않았다. 십수 년을 함께해온 가족 같은 강아지였다. 몽이가 떠난 빈자리는 상상 이상으로 컸다. 마음에 커다란 구멍이 생긴 듯, 그 사이로 찬바람이 숭숭 지나갔다.

"걔는 애한테 정이 없나 봐. 애랑 같이 다녀야지, 심심하게 왜 혼자 집에 있니. 개 아플 땐 개 핑계 대며 안 다니고, 개 죽고 나서는 개 죽었다고 안 다니고."

어머니는 개까지 죽은 마당에, 가족여행에 함께하지 않는 며느리가 못마땅했을 것이다. 악의를 갖고 한 말은 아닐 테지만, 씁쓸한 마음을 숨길 순 없었다.  


고모는 종갓집 맏며느리였다. 고모부와 중매로 만나 결혼을 했는데, 결혼하자마자 얼굴도 모르는 시댁 조상들의 제사를 모시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고모 입을 빌리자면 "쎄가 빠지는 줄 알았다"고 한다.  

"내가 왜 요리를 잘하는 줄 아니? 그게 다 달마다 찾아오는 제사 때문이야. 제사 음식이 어디 맛이 있어야지. 그렇다고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가 떡 버티고 살아계시는데, 제상에 올린 음식을 버릴 수도 없고 말이야. 밍밍한 음식들 다시 볶고 끓이고 하느라, 자연스레 솜씨가 늘었단다."

고모가 가장 싫어하는 제사 음식은 시금치였다. 아빠 기일에 마주앉아 시금치를 다듬을 때마다, 고모는 시금치 욕을 자주 했다.

"너 내가 시금치 안 먹는 거 모르지? '시'자가 하도 징글징글해서, 시금치조차 쳐다보기 싫어지더라. 괜히 시월드라는 말이 생긴 게 아니야. 세상이 무너져도 시월드는 남아 있을걸. 너도 결혼하면 알 거다."

그러면서 고모는 결혼 안 한 조카에게 신신당부를 하곤 했다.

"절대 종손은 안 된다! 고모 꼴 봐라."


고모는 언제부터 시금치를 싫어했던 걸까?

언제부터 시금치를 먹지 않았던 걸까?

큰딸을 낳은 후였을까, 둘째 딸을 낳은 후였을까?

그도 아니면, 아들이라 철석같이 믿었던 셋째 딸을 낳은 후였을까?


고모의 바람이 통했는지, 나의 시댁은 종갓집이 아니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 나는 고모처럼 시금치가 싫어질 때가 있다.


"는 애한테 정이 없나 봐."

"애정 결핍 아니니?"

"우리 아들 밥 굶기는 건 아니지? 우리 아들은 국 있어야 밥 먹는다."

"우리 아들은 어렸을 때 정말 순했는데……."


우리 아들, 우리 아들… 아들 둘은 둔 어머니의 이야기 속에는 항상 '우리 아들'이 주인공이고, '우리 며느리'와 '우리 조카딸'은 좀체 등장하지 않는다. 장하더라도 악역이거나 모자라거나 지나가는 행인들 중 하나일 때가 많다.


어머니는 모른다. 고모가 시금치를 싫어하는 것도 모자라 먹지 않는 이유를, 먼저 떠난 오빠 기일에 조카딸과 마주앉아 열에 들떠 시금치 욕을 하는 이유를 말이다.

어머니는 또 모른다. 자신의 며느리도 고모처럼 가끔 시금치가 싫어질 때가 있다는 것을 말이다. 

어머니가 모르는 것은 이것말고도 더 있다. 조금 둔한 우리 어머니는 착한 사람이고, 행복한 사람이다.




나는 시금치를 다듬는다. 어머니의 두 아들들은 시금치를 다듬을 일이 없다. 나는 시금치를 다듬으며 이렇게 다짐한다. 우리 아에겐 시금치 다듬는 일을 가르치겠다고, 먼 훗날 행복하기만 한 시어머니는 되 않겠다고.


나는 가끔 시금치가 싫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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