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꿈꾸는연필 Jan 05. 2023

펫로스와 정수기 매니저

전화벨이 울린다. 정수기 매니저다. 나는 전화를 받는 대신, 휴대전화를 뒤집어놓는다. 벨소리는 이내 사라졌지만, 소리에 전염된 듯 마음 한구석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왈칵, 눈물이 솟는다.     


나는 언제쯤 정수기 매니저의 전화를 편안하게 받을 수 있을까?     


벌써 두 달째. 나는 정수기 매니저의 전화를 피하고 있었다. 예정대로라면 정수기 점검은 지난 12월 중에 진행되었어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전화를 걸려올 때마다, 나는 문자를 보내 점검일을 미루었다. 차마 그녀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녀는 내가 전화를 받지 않는 이유를 짐작할지 모른다.     




 


정수기 매니저와 나는, 공통점이 있었다. 같은 40대였고, 강아지를 키웠다. 우리는 점검일마다 강아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시간은 내게 알게 모르게 큰 위안을 안겨주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찾아왔던 지난해 9월에도, 우리는 강아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아픈 몽이의 건강을 염려하면서, 몇 해 전 죽은 강아지와 극심했던 펫로스, 그리고 두 번째 강아지를 입양하게 된 이유에 대해 자분자분 풀어놓았다.

“우리 해피가 죽자, 앞이 캄캄했어요. 집에 온통 해피 물건 천지인데, 우리 애만 쏙 뽑아낸 듯 없는 거예요. 정말 죽고 싶었죠. 그런데 참 신기하지요? 우리 둘째 쭈쭈를 입양하고부터, 언제 그랬냐는 듯 우울감이 싹 사라지는 거예요. 해피에게 미안할 정도였다니까요.”

정수기 매니저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어렵게 한마디를 덧붙였다.

“고객님, 만약 몽이 무지개다리 건넌 후 많이 힘드시면, 다른 강아지 입양을 한 번 고려해 보세요.”

나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몽이를 쓰다듬었다.

몽이는 1년 전부터 신부전과 췌장염을 앓고 있었다. 병원에 갈 때마다 상태는 조금씩 더 나빠졌고, 죽기 한 달 즈음부터는 진통제조차 듣지 않아 밤낮없이 울부짖었다.

점검을 마친 정수기 매니저는 누워 있는 몽이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앙상하게 드러난 몽이의 갈비뼈를 바라보며 속삭이듯 중얼거렸다.

“몽아… 다음번 점검일에 다시 만나자…….”

정수기 매니저는 목이 멘 듯 말끝을 흐렸다. 몽이의 모습을 눈에 담으려는 듯, 그녀는 오랫동안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어쩌면 그녀는 그날이, 몽이와의 마지막 만남이 될지도 모른다는 것을 어렴풋이 짐작했을지 모른다.      


정수기 매니저가 다녀가고 한 달 뒤, 몽이는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2005년에 태어나, 17년을 꽉 채운 10월의 어느 날이었다.     






정수기 매니저가 그랬던 것처럼, 나 역시 몽이를 보낸 후 극심한 펫로스를 겪고 있다. 몽이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부터 나와서, 몽이를 아는 사람들을 만나는 게 두려울 정도다. 이 때문에, 정수기 매니저의 전화도 자꾸 피하게 된다.


메시지 수신음이 울린다. 정수기 매니저다.


[ 고객님, 몽이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을 거예요. 힘드시겠지만 기운내세요! 2월에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    


나의 강아지 몽이를 기억하는 정수기 매니저. 내가 겪고 있는 펫로스를 이해하고, 걱정하는 정수기 매니저.


나는 언제쯤 정수기 매니저의 전화를 편안하게 받을 수 있을까?2월에는 그녀의 전화를 받을 수 있을까?


다시, 마음 한쪽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자는 잠에 편안하게 가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