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무암 재질의 돌들로 겹겹이 쌓인 돌담 틈 사이사이로 여름빛의 담쟁이덩굴이 정연하고 정갈하게 잎과 줄기들을 뻗치고 있다. 돌들의 규격이 일정한 것을 보니 아마도 평소 운치를 즐길 줄 아는 돌담 주인은 담을 쌓을 돌들을 직접 공수할 수 없었기에 결국 조경업체에 돌담 공사 시공을 맡긴 것이리라. 그렇게 만들어진 돌담 입장에선 담쟁이덩굴이 치근덕거리는 것 같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군데군데 구멍이 숭숭 뚫린 돌담의 수줍은 곰보자국을 담쟁이덩굴이 가면처럼 가려주니 오히려 담쟁이덩굴의 공을 치하해도 모자랄 판이다. 인공적이긴 해도 멋스럽게 쌓인 돌담, 담을 따라 멋들어지게 뻗어 있는 담쟁이덩굴은 희색이 만면한 막역지교처럼 보인다.
광물과 식물이 빚어내는 조화, 거친 표면과 매끄러운 촉각의 공존, 맞닿으니 보색 대비처럼 더욱 선명해진 서로의 색감. 돌담은 덩굴에게 틈과 공간을 내어주고 덩굴은 돌담의 상처와 틈을 메꾸어 주는 우정과 공생. 고작 돌담 위에 피어난 담쟁이덩굴을 바라보고 있을 뿐인데 난 왜 돌담 앞에 우두커니 멈춰 선 채로 슬픈 상념에 젖어 있는 것일까. 서로를 경원시하는 마음과 단절을 당연시 여기는 마음이 덩굴처럼 뻗어나가는 살풍경한 인간 사회를 떠올리니 쓸쓸하고 혼곤한 마음이 그지없다.
언젠가 직장에서 은퇴를 하면 한적하고 적당한 터를 찾아 세상의 홍진을 피해 유유자적한 삶을 살아보고 싶은 소망이 있다. 운 좋게 나만의 전원주택을 지을 여력까지 마련된다면 인공적인 시멘트 담벼락이 아닌 소박한 담쟁이돌담을 쌓아보고 싶다. 척박한 환경에서도 생명력 있게 뻗어나가는 담쟁이덩굴과 늘 의연하고 꿋꿋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돌담. 담쟁이덩굴과 돌담을 마주할 때마다 생명의 경이로움에 대해 탄복함과 동시에 외압과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는 초연함을 배우게 되겠지. 더불어 담쟁이덩굴과 돌담이 한데 어우러 빚어내는 장관은 '함께 하는 삶'에 대한 깊은 울림을 주지 않겠는가. 자연은 늘 우리의 스승이다.
전원주택에서 돌담을 쌓고 사는 건 어찌 보면 실현되지 못할, 나만의 백일몽으로 끝날 수도 있다. 돌담을 쌓을 수 없다면 돌담 위에 피어난 담쟁이덩굴처럼 살아보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을 것이다. 상대방이 구축해 놓은 내면의 담벼락이 높다면 그 담벼락이 마냥 허물어지기만을 기약 없이 기다리는 것보다 담을 타고 뻗어나가는 담쟁이덩굴이 되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