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 후반에 가까운 기록적인 폭염이 지속되어 실외활동은 꿈도 꾸기 싫은 요즘, 방학을 맞이한 아들 녀석들은 역시 방학을 맞이한 아버지에게원숭이처럼 엉겨 붙어 육아노동을 종용했다. 아들들이 더 어렸을 적엔 주로 책을 많이 읽어줬다. 다른 신체 부위는 편하게 휴식을 취하는 대신 조음기관만 희생하면 되니 책읽어주기는 비교적수월한육아노동이었다.책읽어주기가 안통하는 날이면 꼼수를 부려 아빠가 아프니까 병원놀이를 하자고 녀석들을 꼬드겼다. 아직 잔머리 지수 발달이 덜 된 녀석들은 아버지의 간계를 눈치채지 못하고 군말 없이 의사가 되어 침대에 편하게 누워있는 아버지 환자를 정성껏 치료해 주었다. 후훗. 이런 게 의사 조기교육이겠지? 물론 의사(醫師)도 좋지만 의사(義士)로 성장하길.
하지만녀석들도차츰 머리가 커지다 보니 이젠 병원놀이에 깔린 아버지의 음흉한 내막과 행간을 읽기 시작했다. 갈수록 배터리 용량이 늘어나 아파트 놀이터라도데리고 나가 빡세게 굴려야 녀석들의 넘치는 기운을 진정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런 폭염 속에 밖으로 나갔다간 그 즉시 울릉도 마른오징어가 될 게뻔했기에비상대책을 강구해야만 했다. 방학도 엄연한 육아와의 '전쟁'이다. 전쟁의 신 제갈공명은 이런 때를 대비해서 지혜 주머니를 남기진 않았으려나. 전쟁터를 전전하느라 육아와는 담을 쌓았겠지? 관두자.
폭염을 피하면서아이들의 에너지를 꺼뜨릴 묘안을 찾던 중 키즈카페가 떠올랐다. 어느 정도의 이용료를 지불해야 하지만 그래도 키즈카페 이용료와 나의 육아 노동 시간을 맞교환하는전략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성격의 가치는 있어 보였다. 아들들은 키즈카페에 입장하자마자 자석낚시터를 향해 부리나케 질주하기 시작했다. 자석 낚시터는 내 입장에서도 그리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아들들 옆에 붙어 앉아 세월아 네월아 고기만 낚으면 되니까 팔만 희생하면 될 뿐 다른 신체 기관이 고생할 일은 없을것 같았다. 중년의 가장은 최소움직임 최대효율을 선호한다.
각자터를 잡고 낚시를 시작했다. 물고기를 낚아 바구니를 가득 채워서 카운터로 가져가면 직원은 비타민 사탕 한 알과맞바꾸어 주었다. 어른의 입장에선 고작 사탕 한 알이었지만 아이들의 입장에선 아이템을 얻을 수 있는 일종의도전 과제였다.과몰입하며 낚시에 열중하는 아들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노라니 자석 낚시는 집중력을 키우기 유용하고 성취감도 얻을 수 있는 최고의놀이라는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키즈카페에 잘 온 거 같다.
대충 낚싯대를 던져 놓고 이리저리 휘저으니까 자석 미끼 하나에 두 마리가 딸려오는 등 운좋은(lucky)상황도 가끔 연출되었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여도 하다 보니 은근 욕심이 생겼다. 자잘한 물고기보다 <<노인과 바다>>에 등장하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처럼 어마어마한대어를 낚아 올리고 싶었다.잔바리들 잡듯이 대충 휘저어 봐도 대어는 스치기만 할 뿐 낚싯대에 도무지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몇 번 시행착오를 겪다보니 대어는 자석이 머리나 꼬리 부근이 아니라 뱃살 부위에 붙어 있었던사실을 발견했다.낚싯대로 대어를 툭툭 건드려서 배를 위로 향하게 돌려놓는 것이 대어를 건질 수 있는열쇠(key)였던 것이다.
점차 요령이 붙으니 몸집이 큰 물고기들도 제법 건져 올려 바구니에 물고기들이 채워지는 속도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힘들게 잡아서 기껏 비타민 사탕 하나와 교환했지만 내가 건져 올린 건 단순히 물고기가 아니라삶의 지혜라는 이름의 열쇠를건져 올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난 그동안 인생을 살아오면서 요행에 너무 의지하진 않았나, 걸맞은 노력을 기울이지도 않은 채 성과가 안나왔다고 불평만 하지 않았나, 하는 부끄러운 뉘우침이 슬며시 낚시 바늘에 걸려 있었다.
산티아고 노인이 대어를 낚았던 것은 요행이 아닌 인내와 노하우라는 이름의 지혜 덕분임을 다시 한번 되뇌는 하루였다.
우리가 건져 올려야 하는 것은 럭키(lucky)한 상황이 아니라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키(key)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