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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Sep 15. 2024

도플갱어가 되고 싶었던 개미

도플갱어에서 인생을 배운다.

 주말 동안 손톱도 안 자르고 집에서 빈둥빈둥 뭘 했을까.(사실 책 읽고 글 쓰긴 했지만...) 안타깝지만 월요일의 해는 무심히도 떠올랐고 허둥지둥 사무실로 출근하여 의자에 앉자마자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누르면서 하루를 켰다. 손가락 끝이 아닌 손톱이 먼저 키보드 자판에 닿는 느낌이 영 거슬린다. 서랍 안에서 손톱깎이를 꺼내 막 손톱을 깎으려는 순간 옆자리에 있던 동료와 눈빛이 마주치고 말았다. 동료는 '불결하게 사무실에서 손톱 깎을라고?'라는 메시지가 담긴 눈빛을 찌릿하게 쏘아댄다. 결국 손톱깎기와 휴지를 조용히 챙겨 들고 사무실에서 쫓기듯 나왔다. 


 손톱을 깎을 때마다 늘 해오던 루틴대로 왼손 엄지손톱부터 손톱깎기를 갖다 대었다. 왼손 엄지손톱은 '왜 나부터 죽어야 돼?'는 불만을 표출이라도 하듯 손끝에서 분리되자마자 허공을 향해 럭비공처럼 튕겨나갔다. 예상 낙하지점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사라진 손톱의 흔적을 도저히 찾을 수 없었다. 실내도 아니고 실외라는 안일함을 명분 삼아 더 이상의 수색을 멈추고 나머지 손톱들을 마저 조심조심 잘랐다. 거추장스러웠던 손톱을 다 고 나니 래의 섬섬옥수가 부끄럽게 고개를 들었다. 챙겨간 휴지 위에는 생명의 불씨가 꺼진 각기 다른 모양의 그믐달 아홉 개가 휴지통에 처박힐 운명을 차분히 기다리고 있었다.


 사무실 안으로 들어가려던 찰나 바닥에서 손톱 하나가 움직이고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아깐 그리 찾아도 안 보이던 손톱이 그새 발이라도 생겼는지 술에 취해 귀가하는 아버지의 구둣발걸음처럼 휘청휘청 대며 조금씩 움직이고 있었다. 꽤 흥미롭고 괴이한 광경이라 자세히 살펴보니 개미 한 마리가 나에게 꽤 불만이 많았던 왼손 엄지손톱을 품에 꼭 안고 바둥바둥 행군하고 있었다.


넘겨주느냐, 빼앗아 오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저 개미에게 온전히 내 손톱을 이양해야 하나. 아니면 본래 내 것이니까 다시 뺏어야 하나. 단백질과 칼슘 성분이 함유된 귀한 먹을거리(?)이긴 하지만 저 딱딱한 손톱을 과연 개미들이 먹을 순 있을까? 혹은 다른 용도로 유용하게 쓰일 데가 있나? 손톱에 대한 쓸데없는 상념들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깎은 손톱을 함부로 버리면 쥐가 먹고 자신의 도플갱어가 돼서 나타난다는 전래동화였다.


'개미들이 내 손톱을 나눠 먹는다면 도대체 내 도플갱어가 몇 마리, 아니 몇 명이나 나타나는 거야?'


 무수한 개미떼들이 내 도플갱어가 될 수도 있다는 속설 섞인 사실감에 공포증이 확 밀려오면서 결국 손톱을 빼앗아 오기로 했다. 손을 뻗어 손톱을 으려 하자 위험신호를 감지한 개미는 요리조리 피하며 도망가기에 바빴다. 인간의 손은 개미의 다리보다 빨랐다. 어렵게 얻은 귀한 손톱을 변덕쟁이 인간에게 강탈당해 어깨가 축 처져 힘없이 발길을 돌리는 개미의 모습이 사뭇 처량해 보였다. 개미 입장에선 심히 불쾌했을 것이다.


"버릴 땐 언제고 그걸 또 뺏냐? 측은지심도 없는 인간 녀석아. 전래동화에 나오는 미신 같은 이야기 따위를 아직도 믿고 있냐? 이 한심한 인간 놈아."


 비록 개미들의 도플갱어 작전은 실패했지만 사실 내 안엔 이미 여러 명의 도플갱어가 존재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버블밀크티의 바닥에 깔려 있는 버블알갱이들처럼 여럿의 내가 뒤죽박죽 섞여 있다가 인생을 빨아들이는 순간마다 다른 알갱이가 딸려 올라오 느낌이다.


솔직하지만 위선적인 나.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미워하기도 하는 나.

부지런하지만 게으른 나.

이기적이지만 이타적인 나.

꿈꾸면서 꿈꾸지 않는 나.


 평소 손톱을 자주 물어뜯는 버릇 때문에 내 안에 이리도 여러 개의 자아가 존재하는 걸까? 세계적인 작가 파울로 코엘료는 그의 저서 <<너의 빛나는 순간>>에서 달걀은 외부의 힘으로 깨지면 삶이 끝나는 반면 내부의 힘으로 깨지면 새로운 삶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날 정복하려는 각 자아들의 각개전투로는 의미 없는 소모전만 지속될 뿐, 결국 달걀을 깨고 나오긴 힘들 것이다. 분열을 조장하는 자아는 과감히 버리고 달걀껍데기를 깰 수 있는 지혜롭고 단단한 자아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


위선적인 자아를 버리고 솔직한 자아를 취한다.

미움의 자아를 버리고 사랑의 자아를 취한다.

게으른 자아를 버리고 부지런한 자아를 취한다.

이기적인 자아를 버리고 이타적인 자아를 취한다.

꿈꾸지 않는 자아를 버리고 꿈꾸는 자아를 취한다.


 그동안 나로 위장했던 어둠의 도플갱어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남아 있는 자아들이 연합을 한다. 달걀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껍질을 부수고 새로운 내가 막 태어나고 있다. 진짜라고 부를 수 있는 내가 태어나고 있다.


  나로 위장한 도플갱어에 속지 않으려면  나를, 그리고 남을 온전히 사랑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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