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낙지탕탕이 못 먹어요.

 난 어렸을 적 입맛이 예민하다 못해 까탈스러운 편이었다. 엄밀히 말하자면 음식의 질감, 비린내, 시각적인 부분에 상당히 민감했다. 생선회는 물컹물컹한 식감이 마치 생살을 씹는 느낌이었고, 생선의 비린내는 비릿한 토악질을 쏠리게 했으며, 장어는 아무리 봐도 그냥 징그러운 한 마리의 뱀 같았다.

 죽었던 입맛도 귀신같이 살린다는 군대에서의 고된 훈련을 2년 2개월 동안 버티고 나이를 하나둘씩 먹다 보니 까다로운 입맛은 슬그머니 아재 입맛에 자리를 양보하기 시작했다. 자주 즐겨 찾는 편은 아니지만 식사 자리에 회가 나온다면 이젠 거부감 없이 먹을 수 있다. 뱀, 아니 장어는 비싸서, 없어서 못 먹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나이가 드니까 서서히 식성도 바뀌는가 보다. 아마 육체도 살기 위해 발버둥 치는 것이겠지.

 아저씨가 되어서도 여전히 못 먹는 음식은 존재했다. 그것은 낙지탕탕이다. 분명 여러 갈래로 산산조각 냈음에도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한 꿈틀거림은 호러쇼에 가까웠다. 내 가족친지나 친한 지인들은 탕탕이에 대한 나의 공포감을 익히 알고 있었기에 그 누구도 나에게 낙지탕탕이를 먹잔 말을 선뜻 꺼내지 못했다.

 직장에서 높으신 분들과 함께하는 좌불안석의 즐거운 회식 자리가 마련되었다. 낙지 전문점을 간다고 하길래 잘 익은 낙지비빔밥이나 먹고 오면 되겠다고 단순하게 맘먹었지만 우리의 인생이 언제는 계획대로만 흘러갔던가. 높으신 분들께선 직원들의 원기 회복을 통한 조직의 효능을 높이기 위해 직원들의 의견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낙지 탕탕이를 테이블별로 사람 수에 맞게 주문하셨다.

 이건 아니었다. 요즘 시대가 어떤 시대인데 먹고 싶은 것도 못 먹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주먹으로 테이블을 '탕탕'치며 방금 내리신 결정은 자유민주주의에 위배되는 독단적인 폭력이라고 이 연사 외치고 싶었지만, 그건 용기라기보다 만용에 가까웠기 때문에 탕탕이를 목구멍으로 넘겨야 하는 가혹한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비겁과 만용의 중용이 용기라고 하지 않았던가. 용기 내 보기로 했다. 고귀한 분들께서 힘겹게 마련하신 자리인데 나이 먹고 철없는 어린아이처럼 편식하는 모습을 차마 보여드릴 순 없었다. 사실 편식이라기보다 취향에 가깝지만.

 주방 한 켠의 도마 위에선 낙지들이 '탕, 탕, 탕, 탕, 탕'하며 잔인하게 난도질당하고 있었다. 그렇게 낙지들은 주방 도마의 이슬로 사라졌다. 

 드디어 낙지시체더미가 큼지막한 접시에 담겨 나왔다.

 꿈틀거린다.

 겁이 덜컥 밀려온다.

 잘린 낙지다리들이 똬리를 튼다.

 조사진 다리들이 다시 합체할 것 같다.

 낙지의 비명 소리가 내 귓전을 아프게 때리는 것만 같다.

 용기 한 모금을 비장하게 꿀꺽 삼키고 숟가락으로 탕탕이를 소심한 분량만 떠서 참기름은 최대한 듬뿍 발라 눈을 질끈 감고 억지로 입 안에 쑤셔 넣었다. 낙지다리들이 내 입안 곳곳을 무차별적으로 헤집고 다닐 줄 알았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녀석들이 의외로 내성적인 것이 나와 쏙 빼닮았다. 오돌오돌 씹히는 맛이 심지어 재밌다. 미세한 꿈틀거림도 애교 섞인 장난처럼 느껴진다. 아, 탕탕이가 이런 거였어? 왜 진작 이 맛을 몰랐을까?

'냠냠냠'

 큼지막한 쟁반에서 열심히 호객 행위를 하고 있는 탕탕이가 자신을 먹어달라며 요염한 자태로 유혹하고 있다. 오늘 몸에 좋은 또 하나의 취향을 발견했다. 

해보기도 전에 지레 겁먹지 마. 네가 겁쟁이인 탓에 놓친 것들이 얼마나 많은 줄 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