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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 현곡면 오류리 등나무 6

단편소설

by 이현기

“경주엔……. 사람들이 참 많지요?”


경주라는 말에서 묘하게 말끝을 흐리며 여인은 대화를 이어 나갔다. 솔직히 대답하기 귀찮았다. 북새통의 버스에서 버스 손잡이에 간신히 매달려 이곳까지 왔던 일, 이 작은 산에 하산객들은 왜 이리 많은지 사람들과 섞이고 섞이다 보니 답사 일행을 놓쳐버린 일 등 모든 상황이 날 예민의 깊은 구렁텅이로 거칠게 밀어 넣고 있었다. 체감상 입산객보다 하산객의 숫자가 월등히 많다고 느껴진 건 사실이었다. 분명 올라올 땐 우리 답사 일행을 제외하고 입산객의 숫자가 그리 많지 않아 보였는데 하산객의 수는 입산객 수보다 어림잡아도 몇 배는 더 많아 보였다. 인풋과 아웃풋을 진지하게 따질 여력이 아니어서 건성으로 말을 흘렸다.


“네. 그러네요.”


일행과 합류해야 한다는 조바심은 지친 발에 더욱 불을 댕겼다. 빠른 걸음으로 내리막길을 미끄러지듯 내려갔다. 여인들은 전혀 힘든 기색 없이 나와의 간격을 일정하게 유지하며 날 좇았다. 전문 등산꾼임이 틀림없다. 아니면 이 산을 많이 와봤거나.


“우린 2살 터울 자매예요. 내가 얘 언니이고요. 닮은 것 같나요?”


자매라는 말을 듣고 나서 두 여인을 향해 번갈아 시선을 던졌다. 외모가 꼭 빼닮은 것까진 아닐지라도 자매라는 말에는 수긍이 될 만큼, 외모 자체보단 외모에서 뿜어져 나오는 인상이 얼추 비슷해 보였다. 둘 다 마른 체격이었지만 키는 언니가 육안으로 보기에도 훨씬 더 커 보였다. 2살 터울의 자매는 흥밋거리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질문을 해대며 뭐가 그리 신났는지 연신 킥킥댔다. 더 이상의 질문과 답변은 이어지지 않았다. 두 여인은 나에게 흥미가 떨어졌는지 잰걸음을 빠르게 장전하여 나를 추월했다. 나도 덩달아 속력을 내기 시작했다. 걸음걸이가 얼마나 빠른지 마치 축지법을 쓰는 것 같았다. 얼마 후 자매는 더 이상 내 시야 안에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천신만고 끝에 일행 중 꼴찌로 집결지에 간신히 당도했다. 먼저 도착한 일행들은 한심함과 원망을 섞은 눈빛을 묵혀둔 채 길치 지각생을 기다리고 있다가 나를 보자마자 일제히 쏘아대기 시작했다. 나는 불상처럼 손을 가지런히 모아서 미안하다는 제스처를 건넸다. 마침 시내버스가 시내를 가로질러 정류장에 도착하는 바람에 사람들의 포커스는 내게서 그리 오래 머물지는 않았다. 지각생이 지각하는 사이 우리의 일정이 조금 바뀌었다. 백발의 교수님은 기왕 경주까지 왔으니 접때 말한 등나무 전설의 현장엘 가보자고 권유 같은 협박을 하셨다. 당시 교수님이 말해준 등나무 전설을 귀담아 들었던 여학생들은 교수님의 청춘 같은 낭만에 환호했고, 전설에 관심 없는 남학생들은 교수님의 쓸데없는 기억력에 절망했다. 발 딛고 서 있을 힘도 없었지만, 학점이란 무기를 쥐고 있는 절대권력 교수님의 제안을 감히 거역할 순 없었다. 버스 승차문이 열리자마자 재빠르게 빈 좌석을 향해 들소처럼 돌진했다. 창가 쪽 빈 좌석을 선점하고 승리의 한숨을 돌리니 버스는 슬슬 다음 정류장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버스가 커브를 돌자 정류장 쪽이 보였다. 아까 헤어진 두 여인이 어느샌가 정류장에 서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두 여인은 날 태운 채 떠나가는 버스를 한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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