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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May 16. 2024

새우고추짜장이나, 고추새우짜장이나.

앞이 뭐가 그리 중헌디.

 1. 연고전이나, 고연전이나.


 스승의 날을 며칠 앞둔 금요일 오후 시간,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신입생이 된 제자 2명이 교무실로 찾아왔다. 반가운 마음에  졸업 이후 서로의 근황에 대해서  이것저것 물어보며 오랜만에 회포를 풀었다. 날이 더워서 벗어두긴 했지만,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수건처럼 걸쳐 있는 빠알고려대 과잠이 아까부터 계속 눈에 띄었다. 마침 대화 소재도 고갈되었기에 고러대나 연세대 제자가 찾아오면 으레껏 하는 질문을 형식적으로 던졌다.


"오. 그거 과잠이야? 멋있다. 올해 연고전은 언제 해?"

"선생님, 연고전이라뇨! 고연전이죠."


 고등학교 학적에서 벗어난 제자들은 스승의 말이 잘못되었음을 지적하며 이젠 스승을 가르치려 들었다. 고연전 혹은 연고전치르 해당 대학 출신이 아닌지라 속으로  '연고전이나 고연전이나 그게 그거지.'라고 생각했지만,  막 대학 생활을 시작한 제자들의 자부심을 높여주기 위해서라도 그래 맞아 고연전, 이라고 바로 인정해 줘야 했. 나중에 연세대 재학 중인 제자가 찾아오면 '고연전 언제 하냐.'라고 놀릴 생각이 벌써부터  장난스럽게 찾아온다.


2. 새우고추짜장이나, 고추새우짜장이나.


 오래간만에 아들 1호 하고 단둘이 주말 데이트를 했다.  바이올린 레슨을 마치고 나오는 아들 1호를 납치하다시피 붙잡아서 가까운 중국집으로 연행했다. 맵찔이 아들 1호는 일반 짜장에 미니 탕수육을, 갑각류와 매운맛을 좋아하는 나는 새로운 메뉴인 새우고추짜장을 시켰다. 새우, 고추, 짜장면 3형제 중 순번상 둘째인 고추가 둘째 콤플렉스를 느끼진 않을까 내심 염려가 되었다. 아무래도 첫째인 새우와 막내짜장한테 설심(舌心)이 갔던 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하. 지. 만.

고추무더기 사이에 수줍게 숨어 있는 새우 몇 마리

 염려가 현실이 되었다. 둘째가 콤플렉스를 극복하지 못하고 첫째를 밀어내는 반란을 일으키고 말았다. 내 앞에 놓인 건 새우고추짜장이 아닌 고추새우짜장이었다. 돌무덤같이 쌓인 고추무더기 속 수줍게 숨어 있는 새우 몇 마리. 겉으로 보이는 고추무덤과는 또 별개로 짜장 소스 안에도 엄청난 양의 고추 조각이 이리저리 어지럽게 섞여 있었다. 새우고추짜장이란 메뉴를 보고 당연히 풍만하게 토핑 된, 뽀얀 속살의 감칠맛이 팡팡 터지는 새우 떼를 떠올렸는데 왠지 사기를 당한 기분이다. 사장님을 불러서 메뉴 이름을 고추새우짜장으로 바꿔야 는 것 아니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마저 들었다. 그런데 막상 먹어보니 새우 특유의 느끼한 맛을 고추의 알싸함이 은근  잡아주어 한 그릇을 게눈 감추듯 뚝딱 비웠다.


3. 앞 것이나, 뒷것이나.


 사실 고연전이든 연고전이든, 새우고추짜장이든 고추새우짜장이든 큰 의미는 없다. 하지만 우리는 유독 뒷 것보다 앞 것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이른바 '남아 선호 사상' 아닌 '앞  선호 사상'이 은연중에 우리의 일상 속에 내재되어 있다. 이를테면 철수란 교사와 영희란 교사가 공동 집필하여 교재를 낸다고 하자. 교재 이름을 '철수와 영희의 신나는 문법 교실'이라고 지었을 때 영희란 교사는 은근 기분 나빠할지도 모른다. 앞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가위 바위 보라도 해야 할 판이다.


 대학 입시를 치르는 교사나 학생, 학부모가 불경처럼 외우고 있는 유명한 구절이 있다.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 건동홍숙 국숭세단 광명상가'


 내신이나 수능 성적에 맞게 수도권 대학을 위계화, 서열화한 구절이다. 앞것 선호 사상에 순위 매기기 프레임이 교묘히 결합되어 학벌을 중시하는 우리 사회의 민낯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단면이다. 지방대는 감히 저 구절 속에 명함도 못 내민다. 언론을 통해 '서울대 백수'라는 기형적인 신조어 보도를 가끔 접한 적이 있다. 학벌을 우선시하는 우리 사회가 낳은 비극의 한 부분이다.

출처 : 픽사베이


  과연 위에 언급한 구절 속 앞 것에 속하는 소위  명문출신의 실업자 저 구문 속에 끼지도 못하는 지방대 출신의 취업자 누가 앞이고 누군 뒤라며 함부로 단정 지을 수 있을까. 아니 앞뒤 구분이 진정 의미나 있을까? 결국엔 앞인들 어떠하며 뒤인들 어떠하리가 아닐까. 최선을 다한 꼴찌를 누가 욕할 수 있으리.


 

앞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 때론 작품성 좋은 드라마의 마지막화처럼, 400m 계주의 마지막 역전 주자처럼 뒷것이 더 큰 감동과 여운을 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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