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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기 Jun 20. 2024

개와 늑대의 시간에 끄적이는 시간에 대한 사유

시간 잃고 외양간 고치기

"나 다시 돌아갈래!!!!!!!"


 사랑하는 그녀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하고 밤새 심장이 터질 듯 아파 보니 그녀와의 평범했던 일상이 사실은 심장이 터질 듯 황홀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covid-19로 인해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답답한 마스크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히는 호흡을 내뱉다 보니 마스크 없이 살았던 지난 세월사실은 숨통 트이는 상쾌한 시간이었음을 깨달았다.


 우린 기어이 사건이 터지고 나서야 평안했던 일상의 순간을 뒤늦게 그리워한다. 전쟁이 터져봐야 예전의 평화를 애타게 갈구하듯이 말이다. 평온하게 흘러가는 시간을 그저 그런 시간으로 치부하며 그저 그렇게 흘려보내는 우리는, 보통의 일상에 대해 감사할 줄 아는 지혜가 부족한 건 아닐까. 특별한 일상에만 더욱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어쩌면 보통의 시간을 내버린 자식처럼 차갑게 홀대하고 있는지도 모른.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치기엔 이미 늦었다. 우리 집 소가 튼튼한 외양간에서 여물을 잘 먹고 건강하게 자라고 있는 평범한 일상에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외양간의 소가 암소여서 송아지까지 낳아준다면 더욱 금상첨화겠지만. 그저 그런 시간이든 특별한 시간이든 온갖 시간은 모두 '금'인 것이다. 물론 안 좋은 일을 떠안고 흘러가는 시간도 보석과 같은 가치가 있다. 상처 위에 새살 돋아나듯  내면이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해질 수도 있을 테니.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이름 모를 골짜기에 흐르는 개울처럼 시간은 잔잔히 지나가고 있다. 비록 개울 깊이의 사색일지라도 이를 허락해 주는 이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귀하다. 조물주가 아닌 이상 내일 나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감히 헤아릴 순 없겠지만, 지금 내 삶을 스치는  시간은 그저 그런 시간이 아니라 특별하게 각별한 시간이다.

 때마침 찾아온 개와 늑대의 시간이 푸르렀던 하늘을 불그스레 물들이고 있다. 바라보고 있노라니 온갖 잡념이 사라지고 그저 아름답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서서히 드리우는 검푸른 빛과 점차 꺼져가붉은빛에 비장한 황홀함마저 감돈다. 저 시간 너머의 실루엣이 양을 지키는 개의 것인지, 양을 잡아먹으려는 늑대의 것인지 그 누가 알 수 있으랴. 곧 세상엔 짙은 흑암이 뿌리를 내리겠지만 지금 이 시간이 빚어내는 장관은 찬란하기만 할 뿐이다.


별 탈 없이 고요하게 흘러가는 지금 이 시간은, 그 언젠가 삶에 지쳐 허덕이는 내가 그리워할지도 모를 보배로운 순간이야.


우리의 인생은 모래시계가 아니야. 뒤엎는다고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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