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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도일기 EP10. 확증 편향

병적 낙관주의자

by 가치관의역전

사람들이 주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단연코 내가 매수한 가격보다 주가가 상승하여 수익을 실현하기 위해서다.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주당순이익(BPS) 등의 지표를 공부하고 매수할 주가의 지표를 눈이 아프도록 쳐다보는 것도 결국 상승할 주식을 선별해내기 위함이다. 주식은 확률 싸움이기에 내가 매수할 주식의 산업군의 전망이 반짝이고 지표가 조금이라도 더 유리한 주식을 매수해야 수익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주식투자자들이 매일매일 시황을 챙겨 읽고 각종 카페에서 정보를 습득하는 이유도 결국 수익을 실현하기 위한 주식을 찾기 위함으로 귀결된다. 이처럼 주식투자자들은 바카라와 슬롯머신과 같이 100% 운에 의한 도박과 달리 ‘분석’이라는 행위를 한다. 재무제표와 최신 뉴스를 꼼꼼하게 찾아 읽고 미래를 예상하며 입맛을 다신다. 주식은 도박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는 주식을 ‘주식투자’라고 부르지 ‘주식도박’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물론 난 주식을 ‘도박화’했지만.


주식에 발을 들인 초창기, ‘주식과 사랑에 빠지지 말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하지만 난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려고 하는 어린이들의 동심을 아직까지 갖고 있던 것이었을까? 매수 버튼을 클릭한 그 순간, 난 주식과 ‘오늘부터 1일’이 되었다. 알랭 드 보통의 <나는 왜 너를 사랑하는가>에는 공항 입국 수속장에서 클로이라는 여성에게 반한 주인공의 속마음이 다음과 등장한다.


‘나는 이제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녀가 그 말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그녀가 하는 모든 말에서 완벽함을 찾아내기로 결심했다는 사실이었다.’


나 역시 이야기의 남자주인공이 되는 건 시간 문제였다. 잠에 들기 위해 눈을 감으면 내가 매수한 주식이 빨간색의 꽉 찬 불기둥을 내뿜으며 급등하는 장밋빛 그림이 그려졌다. 출처가 불분명한 확인되지 않은 호재(주식에선 이를 ‘찌라시’라고 한다.)가 마치 이 세상에 실현된 것처럼 여겨지는 환희의 느낌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 주식과 뜨거운 연애를 하고 있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게 하는 것은 종목게시판에서의 나의 반응이었다. 모든 주식에는 투자자들이 해당 주식에 대해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종목게시판이 존재한다. 찬티(주가 상승을 바라는 사람) 유저는 호재성 뉴스와 자신의 내피셜을 어필한다. 안티(주가 하락을 바라는 사람) 유저는 악재성 뉴스와 주가가 하락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사가 위험한 사람처럼 악담을 퍼붓는다. 클린봇이 작동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익명성이 보장된다고 봐도 무방하기에(아이디의 특정 부분만 *표 처리되어 나타난다.) 그런 것일까? 종목게시판에는 대개 정제되지 않은 내용이 즐비하고 다소 거친 언어가 오고 가는 장면까지 목격하기 쉽다. 찬티와 안티가 끊임없이 답글을 달며 저열한 갑론을박을 나누는 장면도 쉽게 볼 수 있다. 나는 내가 매수한 주식의 이 야생과도 같은 공간에서 특이한 읽기 방법을 실천했다. 글들의 제목을 훑다가 나의 선택을 뒷받침해주는 내용이 담겨있을 것 같은 제목이 있으면 스포트라이트를 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는? 당연히 흐린눈의 상태 제목을 바라보며 블러 처리를 한다. 조금이라도 짬이 날때면 이 야생을 들락날락거리며 위의 과정을 반복하는 조명 감독이 되었다. 무서운 것은 그 당시에 내가 이러한 메커니즘으로 글들을 읽으려 하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마치 사랑에 눈이 먼 병적 낙관주의자처럼.

2019082701073011000001_b.jpg (출처: 문화일보, <오후여담>확증편향의 범죄성)

2000년 닷컴 버블 당시, 수많은 투자자들이 IT기업의 실적 약화를 무시했던 과거를 아는가? 그 결과 큰 폭의 하락과 기업의 파산을 야기한 그 사건 말이다. 사람들이 스스로 이미 믿는 것과 일치하는 정보를 더욱 강조하고 찾으려 하며 그 반대인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인 ‘확증 편향’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 역시 이러한 인간의 본성을 이기기엔 나약했나보다. 나의 주식인생에 서서히 금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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