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나약하다
주식을 도박처럼 해왔고 이와 거리를 두려고 하고 있는 시간 속에서
내가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인간은 나약하다.
누군가는 말했다.
도박으로부터의 해방은 무력함을 인정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혼자 해낼 수 없다. 나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악깡버'라는 말이 있다. '악으로 깡으로 버티라'라는 의미의 신조어이다. 조금 더 깊게 들여다보면 "네가 한 선택은 네가 책임지고 감당하라"는 의미도 담겨있다. 도박의 결과물을 '악깡버'하는 건 어떤 모습일까? 도박을 해왔다는 사실과 현재의 상황을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아야 한다. 마음 깊은 곳에서 끓어나오는 용암을 속으로 삭여야 한다. 뇌 안에서 애벌레가 꿈틀거리다가 머리를 뚫어버리고 나올 것 같은 어지러움을 삼켜야 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것은 스스로 견디지 못한 꼴이 되기 때문에 나의 의지로 버텨야 한다. 하지만 당당히 말할 수 있다. 도박에서의 '악깡버'는 나를 곪아터지게 만드는 지름길이라고. 결국 파멸에 이를 것이라고.
힘이 없음을 인정하는 데에는 역설적으로 큰 힘이 필요했다. '노력은 배반하지 않는다'는 신조의 대척점에 존재하는 명제를 마음에 새기는 것은 나의 정체성을 흔들었다. 피부의 문신은 찰나의 고통을 참으면 되지만 "나는 무능하다"는 마음의 음각은 그때도, 지금도 아리고 시리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는 것 또한 나의 의지, 나의 힘이라고 생각하니 이후 머릿속에서 부유물처럼 둥둥 떠다니던 실천 문장들이 줄을 맞춰 정렬하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무능하다. 그러므로 나의 재발을 막아줄 수 있는 물리적인 장치가 있어야 한다. 수갑이나 철창 같이 나에게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변화들이 필요했다.
첫째, '상담센터 매달 다니기'이다. 물리력은 강제적인 힘이다. '꾸준히 다니기'는 애매하기에 주기를 정확하게 설정했다. 한달에 한번, 집에서 센터를 갈 준비를 하고 집에서 나와 센터로 오고 가는 시간과 비용, 에너지. 그것들은 나의 현재 상태를 상기시키는 벌이자 마음이 해이해지지 않도록 하는 의식화의 과정이다. 날이 선 바람을 온몸에 맞으면서 이건 의식화의 과정이라는 것을 수백번 되뇌이니 감히 수련자가 된듯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리고 상담센터에선 내 마음, 생각, 감정, 느낌들을 내가 형용할 수 있는 모든 단어들로 쏟아낸다. 스스로를 다독인다.
둘째, '상환 내역 부모님께 매달 보여드리기'이다. 현재 내 월급의 대부분은 빚 상환에 쓰인다. 있었는데 없다. 스쳐지나간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현재 나는 월급날, 상환내역을 캡쳐해서 부모님과 내가 있는 단톡방에 보낸내겠다고 다짐해온 이후 이를 실천하고 있다. 그리고 만약 월급날 상환 내역을 보내지 않는다면 저녁에 전화를 부탁한다고. 부모님께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 위해선 이 공언을 지켜야 한다. 어떻게 보면 이건 물리력이라고 하기엔 애매하다. 그만큼 가족의 힘은 막대하다. 언젠가 내 월급이 온전히 꽂힐 때 얼마나 뿌듯하고 든든할까 기분좋은 어림을 해본다.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온함을 주시고
어쩔 수 있는 것은 바꾸는 용기를 주시고
그리고 이를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나에게 '어쩔 수 없는 것'과 '어쩔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삶은 이를 구별하는 연속의 과정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