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욕에 대하여

by 상아

나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아주 강한 꼬마였다. 남에게 지는 건 죽기보다 싫어서 내가 응원하는 팀은 꼭 이겨야 하고 (그래서 북을 두드리며 목이 터져라 응원하다가 선생님에게 제지 받고) 체육 시간도 좋아해서 피구나 발야구 할 때 꼭 팀에 도움이 되는 에이스가 되고 싶었다.

초등학교 때 반에서 공기 대회를 했었는데, 거기서 처참하게 실패한 후 아빠한테 몇 달 간의 특훈을 받아서 결국 우승했던 적도 있다.


이런 지금의 나는 승부욕이 없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 왜일까?


승부욕이 있는 게 좋지 않다는 경험을 너무나 많이 했다. 일단 지면 마음이 너무 쓰리다. 꼭 이기고 싶었지만 늘 이길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지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그 지는 느낌이 견딜 수가 없었다. 또, 뭐랄까, 나는 승부욕이 어울리지 않는 ‘소녀’ 같았달까? 나는 작고 아담한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나에게 승부욕이 있는 모습을 기대하지 않았다. 난 착한아이 콤플렉스가 있었기 때문에 늘 밝게 웃고 다니는 아이였는데, 그런 아이에게 게임에서 졌다고 화를 내는 캐릭터는 도무지 어울리지가 않는 모양이었다.


나는 승부욕이라는 개인적 특징을 꽁꽁 숨긴채 승부욕이 없는 척 행동했다. 이기려고 열심히 덤비지도 않고, 졌다고 가슴 쓰려하지도 않고 쿨한 척, 이기고 지는 승부엔 관심 없는 척 했다. 그러다보니 정말로 내 안에 승부욕이 사라졌다. 정말로 져도 이겨도 상관이 없었다.


나는 늘 남들의 정답을 맞추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듣고 싶어하는 말을 유추해서 하고, 기대하는 행동을 기가막히게 맞춰서 해 주는 사람이었다. 누군가를 실망시키는 일이 가장 무서웠다. 그런 나에게 승부욕 하나 없애는 일은 식은 죽 먹기였을 것이다.


근데 왜 이제와서 승부욕에 관한 글을 쓰고 앉아있나? 그대로 잊어버린 채 살면 되지.


얼마 전 동그라미와 오목을 두었다. 알고보니 동그라미는 오목의 고수였다. 내가 계속 졌다. 이기고 싶어서 눈을 크게 뜨고 집중하며 한 수 한 수를 뒀지만 역부족이었다. 어디선가 자꾸 3개가 연결되고 4개가 연결된 바둑알들이 등장했다. 분했다. 화가 났다! 이길 때 까지 오목을 두고 싶었다. 갑자기 초등학교 때 공기에서 졌던 꼬마가 튀어 나왔다. 이 동그라미를 언젠가 내가 꼭 이기고 말리라. 아빠를 찾아갔다. 아빠와 노트에 줄을 긋고 오목을 뒀다. 졌다. 지고 지고 또 졌다. 아빠는 동그라미보다 더 고수였다. 일주일만 배우면 동그라미를 이길 수 있게 해주겠다고 했다. 레슨비로 만원을 요구했다. 거래가 성립했다.


아빠에게 동그라미와 오목을 둔 일화를 이야기 하며, 공기를 배웠던 초등학교 때가 생각났다고 얘기했다. 아빠도 아빠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옛날 어느 날 이모부와 둘이 볼링을 쳤는데 아빠가 처참하게 졌다고 한다. 아빠는 볼링의 고수는 아니었나보다. 그래서 분한 나머지 한달 뒤 재대결을 요청했고 아빠는 볼링공도 하나 맞춰서 한달 내내 열정적인 볼링 연습에 돌입했다고. 그리고 결국 한달 뒤 이모부를 깔끔하게 이겨버렸다는 영웅담이었다.


이 이야기를 듣는데 너무 웃겼다. 아, 이 승부욕은 유전이구만. 아빠의 승부욕은 귀여웠다. “이길 수 있으면 이왕이면 이기는게 좋잖아.” 하는데 내 안에 죽어있던 승부욕이 빼꼼 고개를 들고 ‘나 나쁜 것만은 아니였지?’ 했다. 그러게. 이기고 싶은 욕망을 가지는 건 나쁜 일이 아닌데, 왜 자꾸만 나쁜 감정이라고 했지. 왜 내 승부욕을 미워했지.


그래서 더 이상 내 승부욕을 죽이면서 살지 않고 싶어졌달까. 그냥 좀 귀여워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나에게 바라는 이미지 같은 건 상관없이, 내가 나인채로, 내 특성대로, 살아도 괜찮잖아? 아무 일도 안 생기잖아?


그래서 바둑판을 샀다. 아빠 잘 부탁해요. 다음엔 동그라미를 이긴 영웅담을 쓰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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