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14 : 딸, 라디오 스타 되다

내 친구 라디

by CㅇSMㅇS

고립무원의 섬에서 만난 친구

육아휴직 초반, 아내가 출근하고 나면 집은 고요한 섬이 되었다. 말 못 하는 아기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은 평화로우면서도, 때로는 사무치게 외롭고 적적했다. 대화할 사람이 필요했다. 사람의 목소리가 그리웠다.

그래서 나는 창고 구석에 박혀있던 낡은 라디오를 꺼냈다. 주파수를 맞추자 치직거리는 소음과 함께 DJ의 활기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날부터 라디오는 나의 가장 친한 육아 동지가 되었다. 신나는 댄스곡이 나오면 딸을 안고 거실에서 춤을 췄고, 슬픈 사연이 나오면 젖병을 씻으며 함께 훌쩍거렸다.


도전! 육아휴직 아빠의 퀴즈 쇼

그러던 어느 날, 지역 라디오 방송에서 '청취자 퀴즈쇼'를 한다는 멘트가 들렸다. 상품이 꽤 쏠쏠했다. 나는 즉시 문자를 보냈다. "지금 10개월 된 딸아이 가정보육 중인 육아휴직 아빠입니다!" 역시 '육아휴직 아빠'라는 키워드는 방송국 사람들이 절대 지나칠 수 없는 떡밥이었다. 1분도 안 돼서 작가님에게 전화가 왔다.

"아버님, 지금 바로 생방송 연결 가능하시죠?"

심장이 쿵쾅거렸다. 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전투 준비'를 했다. 퀴즈는 총 5문제. 뒤로 갈수록 난이도가 높아진다. 나는 식탁 위에 스마트폰 두 대를 세팅했다.

폰 A: 방송국 연결용 (스피커폰 모드)

폰 B: 실시간 검색용 (엄지손가락 대기 중)

"네, 1번 문제 나갑니다!" 1, 2번은 상식 문제라 가볍게 통과했다. 하지만 3번부터는 난이도가 급상승했다. DJ가 문제를 읽어주는 순간, 나의 오른손 엄지는 빛보다 빠르게 폰 B의 검색창을 두드렸다.

"정답! 클라우드 펀딩!" "와, 아버님 박학다식하시네요! 4번 갑니다!"

박학다식은 개뿔, 이건 정보 검색 능력 테스트였다. 딸은 아빠가 뭘 하는지도 모르고 옆에서 "아바바바" 옹알이를 하며 배경음악(?)을 깔아주었다. DJ는 "아이고, 우리 아기 목소리도 들리네요~" 하며 좋아했다.

결과는? 5문제 전원 정답. 며칠 뒤, 우리 집 현관 앞에는 안동 간고등어 세트, 종합 과자 선물 세트, 지역 특산품 등 전리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였다. 나는 아내에게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봤지? 나 놀면서 애만 보는 거 아냐. 생활비도 번다고."


2년 후, 다시 울린 전화벨

그로부터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나는 여전히 육아휴직 중이었고, 딸은 어느덧 세 살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안녕하세요, OO 라디오입니다. 혹시 2년 전에 퀴즈쇼 우승하셨던 육아휴직 아버님 맞으세요?"

방송국에서 '그때 그 사람' 특집을 준비 중인데, 2년 전 퀴즈왕이었던 그 아빠가 지금은 뭐 하고 사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

"네, 저 아직도 육아휴직 중입니다. 만 3세까지 제 손으로 키우겠다고 약속했거든요."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라디오 전파를 탔다. 달라진 게 있다면, 내 옆에 있는 딸이었다. 2년 전에는 "응애" 소리밖에 못 했던 핏덩이가, 이제는 제법 또렷한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했다.

"안녕하세요, 박ㅇ은입니다!"

DJ와 청취자들은 기적을 목격한 듯 감동했다.

"세상에, 그때 그 옹알이하던 아기가 이렇게 컸나요?", "아버님 진짜 대단하십니다."

쏟아지는 응원 세례를 들으며, 나는 묘한 뭉클함을 느꼈다.


우리의 시간은 기록되었다

라디오는 단순히 심심풀이 땅콩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육아휴직과 딸의 성장을 기록해준 타임캡슐이었다. 치열하게 퀴즈를 풀며 분유 값을 벌던 초보 아빠의 시절, 그리고 훌쩍 자란 딸과 함께 휴대폰 마이크 앞에 선 지금. 라디오 전파를 타고 흐른 우리의 목소리는, 그 어떤 성장 앨범보다 생생하게 그 시절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가끔 운전을 하다 라디오를 켠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를 들으며 생각한다. 언젠가 딸이 더 커서 시집갈 때쯤, 다시 한번 사연을 보내볼까?

"안녕하세요, 20년 전 그 육아휴직 아빠입니다. 우리 딸이 오늘 결혼을 합니다." 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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