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13 : 세상을 다 가진 아빠, 30개월의 약속

천일의 기적

by CㅇSMㅇS

20개월의 갈림길 : 월급인가, 시간인가

딸이 생후 8개월 되던 때 시작한 나의 첫 번째 육아휴직. 어느덧 1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 딸은 20개월 어린이가 되었다. 동시에, 나에게는 냉혹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당시 제도로는 육아휴직 수당이 딱 1년까지만 지급되었다. 즉, 이제부터 더 아이와 시간을 보내려면 '수입 0원'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통장 잔고는 줄어들고 있었고, 직장에서 동기들은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 상식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이제는 돌아가야 할 때였다. 아내도 조심스럽게 물었다.

"여보, 이제 1년 채웠으니 복직할 거야? 이제부턴 수당도 안 나오잖아."

나는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머리로는 '돌아가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가슴은 전혀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나는 3일 동안 밤잠을 설쳐가며 치열하게 고민했다. 복직하면 끊겼던 월급이 다시 들어온다. 하지만 딸아이의 이 찬란한 성장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1년간 지켜본 딸의 성장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 과정을 어린이집 선생님이 아닌, 내가 온전히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이 나를 붙들었다.

3일째 되던 날 저녁, 나는 아내에게 내린 결론을 말했다.

"아니, 나 육아휴직 1년 6개월 더 연장할게. 무급이라도 상관없어. 우리 은이 36개월 될 때까지, 내 손으로 직접 키울 거야."

"정말 괜찮겠어? 돈도 돈이고, 승진도 엄청 늦어질 텐데..." 아내의 걱정 섞인 눈빛에도 나는 단호했다. 이것은 '쉬겠다'는 도피가 아니었다. 내 인생 가장 중요한 프로젝트에, 내 '연봉'과 '경력'을 기꺼이 지불하고 '딸과의 시간'을 사겠다는 과감한 투자였다.

장인어른조차 혀를 차셨다. "자네, 한창 돈 벌 나이에 집에만 있으면 쓰나... 남자가 밖에서 일을 해야지." 그 시선이 가슴에 박혔지만, 나는 물러서지 않았다. 나에게는 그 어떤 연봉보다 더 값진, 확고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결정적 시기 (Critical Period)

나는 지난 1년간 공부했던 육아 서적들을 다시 펼쳤다. 그리고 '왜 하필 36개월인가'에 대한 과학적 근거들을 되새겼다.

첫째는 '애착 이론(Attachment Theory)'이었다. 존 보울비는 생후 6개월부터 만 3세(36개월)까지가 주양육자와 안정적인 애착을 형성하는 '결정적 시기'라고 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신뢰와 안정감은 아이가 평생을 살아갈 정서적 뿌리가 된다. 나는 이 뿌리를 남의 손이 아닌, 아빠인 내가 직접 단단하게 심어주고 싶었다.

둘째는 '뇌 발달'이었다. 인간의 뇌는 만 3세까지 성인 뇌의 80% 크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특히 감정과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시냅스가 가장 활발하게 연결되는 시기다.

셋째는 '언어 발달의 폭발기'였다. 이제 막 말문이 트이기 시작한 딸에게, 나는 일본어로 말을 거는 '이중언어 육아'를 하고 있었다. 어린이집에 보내면 이 절대적인 언어 노출 시간이 확연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기관의 n분의 1 케어가 아니라, 아빠와의 1대1 수다를 통해 딸의 언어 그릇을 꽉 채워주고 싶었다.


약 없는 세상, 마스크 없는 세상

그리고 무엇보다 건강이 마음에 걸렸다. 주변을 보면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감기, 수족구, 장염을 달고 사는 아이들이 많았다. 물론 면역력을 기르는 과정이라지만, 나는 그 시기를 최대한 늦추고 싶었다. 적어도 아빠인 내가 지켜줄 수 있는 시간 동안만큼은, 약 기운이 아닌 밥심으로, 아픈 기억 없이 건강하게 키우고 싶었다. (실제로 딸은 가정보육을 하는 30개월 동안, 아파서 병원 간 일이 한 번도 없다.)

더불어 지긋지긋한 당시의 '코로나19'도 큰 이유였다. 한창 표정을 보고 감정을 배워야 할 시기에, 어린이집에서 하루 종일 마스크만 보고 자라게 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내 품에 있는 동안만큼은, 마스크 없이 마음껏 숨 쉬고 웃게 해주자." 그것이 아빠로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의 방어였다.


30개월의 약속

나는 직장에 '무급' 육아휴직 연장 신청서를 냈다.

그렇게 나는 처음 12개월에 추가 18개월을 더해, 총 '30개월 가정보육'이라는 대장정을 선택했다. 매일 아침 딸의 눈을 맞추며 깨우고, 마스크 없는 얼굴로 하루 종일 살을 부대끼며 놀고, 잠들 때까지 곁을 지키는 삶. 통장 잔고는 멈췄지만, 딸을 품에 안은 내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풍요롭게 흘러갔다. 나는 이 30개월을 내 인생 가장 화려한 경력으로 채우기로 약속했다.

"서은아, 아빠랑 3년 꽉 채워서 놀자. 세상에서 제일 재밌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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