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편 11 : 아빠라는 이름의 경쟁력

by CㅇSMㅇS

나는 좋은 아빠일까, 아니면 그저 '엄마 없는 집'일까?

기나긴 육아 슬럼프의 터널을 지나고 나자, 문득 근본적인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지금 잘하고 있는 게 맞나?' 어느 날, 영상 통화를 하던 어머니가 걱정스럽게 물으셨다. "애가 엄마를 안 찾고 괜찮나? 그래도 엄마 손길이 다를 텐데..." 악의 없는 걱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서늘해졌다.

물론 나는 최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의 최선이, 과연 딸에게 '엄마의 최선'만큼이나 좋은 영향을 주고 있는 걸까? 내가 아무리 노력한들, 세상이 말하는 '모성애'의 빈자리를 채울 수 있을까? 나는 그저 '엄마 없는 집'의 서툰 대리인에 불과한 것은 아닐까?

이 불안감을 해소하기 위해, 나는 다시 책과 논문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아빠'라는 존재가 가진 놀랍고도 강력한 경쟁력을 발견했다. 그것은 '엄마를 대체하는 능력'이 아니었다. 바로 '엄마와는 다른 능력'이었다.


논문 속에 숨어있던 아빠의 '치트키'

1. 아빠의 '쓸데없이 어려운' 단어 공격

수많은 언어 발달 연구에 따르면, 엄마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단어를 단순화하고 반복하는 경향이 있는 반면, 아빠는 성인과 대화하듯 더 다양하고 복잡한, 소위 '희귀 어휘'를 사용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걸 읽고 무릎을 탁 쳤다. 어쩐지 내가 딸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갑자기 "이건 공룡 시대의 '지각 변동' 때문에 생긴 지형이야" 라거나, 재테크 책을 보다가 "이건 우리가 가진 '자산'이고, 이건 은행의 '부채'란다" 같은 헛소리를 할 때마다,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더 집중하는 것 같았다. 아이의 뇌는 쉬운 단어보다, 이해할 수 없는 새로운 단어에 더 강력하게 자극받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쓸데없이 어려운' 단어 공격이, 사실은 딸의 언어 세계를 넓히는 최고의 무기였다.

2. 아빠표 WWE 레슬링, 그 효과

아빠 육아의 상징과도 같은 '몸으로 놀아주기'. 연구에 따르면, 아빠와의 과격하고 예측 불가능한 신체 놀이(Rough-and-tumble play)는 아이의 '사회성'과 '감정 조절 능력'을 폭발적으로 성장시킨다.

우리 집 거실에서는 매일 밤 WWE 레슬링이 열렸다. 나의 필살기는 '자이언트 스윙'. 딸의 양팔을 잡고 빙글빙글 돌려주면, 딸은 세상을 다 가진 듯이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너무 흥분해서 나를 때리거나, 놀이가 격해지려고 하면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타임! 아빠 아야해. 살살." 그러면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내 볼에 호- 해줬다. 이 과정을 통해 딸은 자신의 흥분과 좌절을 통제하는 법, 그리고 '여기까지가 장난이고, 이 선을 넘으면 안 된다'는 사회적 규칙을 몸으로 체득하고 있었다.

3. '아빠'는 최고의 성 역할 교과서

가장 결정적인 것은, 아빠가 주양육자가 됨으로써 아이에게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육'이다. "남자는 일, 여자는 육아"라는 낡은 고정관념은, 아빠가 기저귀를 갈고, 젖병을 씻고, 아이와 함께 장을 보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부서진다.

어느 날, 딸이 소꿉놀이를 하다가 내게 말했다.

"아빠는 일 안하고 집에서 아기 돌봐. 나는 엄마야. 엄마는 회사 가는 거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나는 어떤 육아 서적을 읽었을 때보다 더 큰 감동과 확신을 느꼈다. 내 딸의 세상에서는, 아빠가 집에 있고 엄마가 일하는 것이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아빠의 육아휴직은, 그 어떤 동화책보다 더 강력한 양성평등 교과서였다.


나는 '대체재'가 아니었다

이 모든 사실들을 깨닫고 나자, 나는 더 이상 불안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의 빈자리를 채우는' 대체재가 아니었다. 나는 엄마와는 다른 방식으로 딸의 세상을 넓혀주는, 대체 불가능한 '아빠' 그 자체였다.

엄마가 주는 섬세한 공감과 안정감 위에, 아빠인 나는 예측 불가능한 도전과 새로운 언어, 그리고 자유로운 역할 모델을 더해주고 있었다. 엄마와 아빠라는, 두 개의 다른 세계가 만나 딸의 우주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경쟁력은 '완벽한 엄마'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경쟁력은, 그저 '아빠'라는 이름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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