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이슈반슈타인 성까지 질주
독일 소도시의 지루함과 1억 4천짜리 리모델링
미르스부르크를 구경했는데 솔직히 별로 볼 만한 게 없었다. 식당도 애매하고 대충 시간을 때우다가 린다우로 넘어갔다. 가는 길에 드디어 아우토반에서 180km/h까지 밟아봤다. 살짝 떨리긴 했지만 차가 바닥에 쫙 깔려 나가는 게 제법 재밌다.
린다우에 도착했지만 여기도 심심하긴 매한가지였다. 독일까지 왔으니 의무감에 학센, 슈니첼, 프레첼을 종류별로 시켜 먹어봤는데 맛도 그냥 별거 없었다. 고기 튀기고 빵 구운 게 전부인데 우리 동네 국밥 한 그릇이 간절해지는 맛이다.
아이가 흙장난하는 곳이 있어서 한참 놀리고 주차 계산을 하려는데, 아차, 주차권이 없다. 순간 머리가 하얘졌다. 내 소중한 투자금이 길바닥에 뿌려질 위기다. 직원한테 뛰어가 상황을 설명하니 결제한 신용카드를 가져오라고 해서 대조를 해본다. 원래 분실 시 50유로(약 7만 5천 원)를 내야 하는데 다행히 직원이 쿨하게 봐줬다. 십년감수했다.
예약한 숙소는 거리가 좀 있어서 들어가는 길에 마트에 들러 장을 봤다. 확실히 살인적인 스위스 물가에 얻어맞다가 오니 독일 마트는 천국처럼 느껴진다.
도착한 숙소는 좀 희한했다. 가전제품이 전부 독일제 최고급 라인업이었다. 빨래 건조대가 없냐고 물으니 호스트가 직접 건조기로 우리 옷을 돌려다 줬다. 소파베드도 엄청 편했다. 알고 보니 이 집 개조하는 데만 무려 1억 4천만 원이 들었단다. 어쩐지 숨 쉴 때마다 돈 냄새가 나더라니.
아우토반 200km/h와 지각 위기
다음 날, 8시에 일어나서 빈둥대다 아침을 먹고 출발 준비를 하는데 등골이 싸늘해졌다. 12시까지 노이슈반슈타인 성에 도착해야 하는데 내비게이션 예상 시간이 아슬아슬했다. 여기는 다른 관광지처럼 표 끊고 아무 때나 털레털레 들어가는 게 아니라, 지정된 시간에 직원과 함께 한정된 인원만 입장하는 시스템이다. 그 시간을 놓치면 국물도 없다. 내가 너무 느긋했다.
정신없이 짐을 챙겨 나가서 아우토반 A7 고속도로에 올라탔다. 여기가 꽤 유명한 드라이브 코스라는데 경치고 뭐고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다. 마음이 급해서 180km/h로 계속 달리다가 결국 엑셀을 더 꽉 밟아 200km/h까지 찍어봤다. 한국에서는 조신하게 낡은 아반떼 몰고 출퇴근하는 평범한 아저씨가 독일 한복판에서 200을 밟다니, 등골에 땀이 흐르면서도 짜릿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길이 오스트리아 국경을 살짝 넘고 다시 독일 국경을 넘는 루트였다. 먼저 오스트리아 국경을 넘었는데, 갑자기 데이터 로밍이 끊기면서 길 안내가 먹통이 됐다. 그래서 엉뚱한 길로 가버렸다. 안 그래도 시간 없어서 피가 마르는데 내비까지 죽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급하게 폰을 재부팅하니 겨우 살아났다. 오스트리아는 비넷(통행권) 없이 고속도로를 타면 벌금 폭탄을 맞는데, 혹시 내가 거기로 잘못 들어간 건 아닌지 덜컥 겁이 났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다행히 비넷이 필요 없는 도로였다.
국경 검문소에서는 앞에 있던 헝가리 차가 시간을 질질 끌어서 속이 타들어 갔지만 다행히 무사통과했다. EU끼리는 국경 넘는 게 동네 마실 수준인 줄 알았는데 방심할 게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주차장에 도착하니 자리는 많았다. 그런데 운 나쁘게도 성으로 올라가는 셔틀버스가 내 눈앞에서 방금 출발해버렸다. 1분 1초가 급한 상황. 다음 버스를 타고 도착하자마자 아내와 아이 손을 잡고 미친 듯이 뛰었다. 여기서 한 번 놀랐다. 딸이 엄청난 에너지를 발휘하며 앞장 서서 뛰어간 것이다. 나도 헉헉거렸는데... 아이 체력은 못 따라간다.
성 매표소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5분. 헐떡거리며 표를 내미니 직원이 "앱솔루틀리 오케이"라며 씩 웃고는 12시 20분 입장 티켓으로 바꿔줬다. 진짜 살았다. 오스트리아 비넷 벌금 물고 성 입장료까지 공중분해 될까 봐 쫄았던 마음이 한순간에 녹아내렸다.
거대한 덕질의 산물, 노이슈반슈타인 성
힘들게 들어간 노이슈반슈타인 성 내부는 확실히 한 번 들를 가치가 있었다. 디즈니랜드 신데렐라 성의 모티브가 된 곳답게 눈이 돌아갈 정도로 화려했다.
알고 보니 이 성은 19세기 바이에른의 왕 루트비히 2세가 바그너의 오페라와 중세 기사 전설에 푹 빠져서 지은 '거대한 덕질'의 산물이다. 왕이라는 양반이 국정 운영은 뒷전이고, 빚까지 져가며 산꼭대기에 자기만의 판타지 테마파크를 지은 거다. 결국 예산 펑크 내고 빚더미에 앉은 왕은 미치광이 취급을 받으며 쫓겨났고 며칠 뒤 호수에서 의문사했다. 완벽한 하우스 푸어의 최후다.
물론 그 낭비벽 덕분에 지금 독일 후손들은 이 성 하나로 전 세계 관광객의 주머니를 탈탈 털고 있으니, 장기 투자 관점에서 보면 아주 훌륭한 부동산 알박기였나 싶기도 하다. 아이도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 설명을 들으며 꽤 재밌어했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알프스 산맥과 호수의 경치는 완벽 그 자체였다. 아까 지각할까 봐 지나쳤던 마리엔 다리로 다시 가보니 대기 줄도 없어서 여유롭게 인생샷을 남겼다.
산을 내려와 퓌센 시내에 있는 독일판 올리브영 'dm'에 들러 크림과 치약을 쓸어 담았다. 무료 주차권을 끊어두고 시간이 조금 넘어서 다녀왔는데, 돌아와 보니 딱 주차 단속 요원이 주변을 돌고 있었다. 타이밍 예술이다. 1분만 늦었어도 과태료를 물었을 거다. 오늘 운이 좀 따라준다.
뮌헨 숙소로 향했는데 집이 매우 낡았다. 게다가 세탁기가 없어서 물어보니, 호스트 할머니 아들이 세탁기 사용 시 5유로를 내라고 한다. 빨래 한 번 돌리는데 7천 원을 태우라니, 이건 또 무슨 신종 창조 경제인가. 사진이랑 조건이 달라서 항의 전화를 하니, 집이 넓고 식기세척기가 있으니 그걸로 퉁치자고 한다. 피곤해서 핏대 세우기 싫어 그냥 알겠다고 했다.
내일 뮌헨 시내 일정도 교통비를 계산해 봤다. 뮌헨 주차비가 비싸기로 악명 높지만, 우리 세 식구 대중교통 왕복 요금을 계산해 보니 그게 더 비싸다. 철저한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볼 때 대중교통의 낭만 따윈 개나 주고 그냥 차를 끌고 가는 게 답이다. 내일 뮌헨 시내도 내 차로 가성비 있게 정복해주마.
드디어 세상에 나왔습니다! 『나는 88년생 지방직 공무원입니다』 출간
모두가 "지방은 끝났다", "월급만으론 답이 없다"고 말할 때, 저는 이 변두리 소도시를 저만의 든든한 '자본주의 베이스캠프'로 개조했습니다. 전 세계 자산에 투자하고, 30개월의 아빠 육아휴직을 온전히 누리며, 80일간의 가족 세계일주를 완주해 낸 현실적인 실전 생존기입니다.
남들이 정해놓은 길 대신 나만의 궤도를 유쾌하게 설계하고 싶은 분들께, 이 책이 팍팍한 일상의 확실한 돌파구가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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