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아보면 항상 눈부시게 아름다웠던, 우리들의 인생 이야기.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이 짧은 한마디가 나를 무너져 내리게 하고, 이렇게나 많이 울게 할 줄이야. 그동안 당신의 삶이 어떻든 간에, 되돌아보면 모든 순간들이 눈부셨음을, 작은 위로 한마디를 건넨다.
연출, 스토리 하나하나가 다 완벽했고, 그렇기에 더욱 마음이 먹먹해지는 순간들이 존재한다.
모든 이야기의 주체인 혜자는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당차고 씩씩한, 아나운서를 꿈꾸는 인물이다. 조금은 넉넉하지 않은 형편이지만, 미용실을 하는 엄마, 택시 기사를 하는 아빠, 철없는 오빠와 한 지붕 안에서 살아간다. 절친인 두 친구들 또한 혜자의 인생에서 활력소가 되는 존재이다.
항상 오르막길만 있다면 그것이 과연 인생인가. 그렇지만 혜자에게 유난히 고난은 갑작스럽고, 억울할 정도로 매섭게 몰아친다. 갑작스러운 사고로 아버지가 죽음에 이르게 되고, 결국 숨겨두었던 유일한 수단인 ‘시계’를 사용하게 된다. 이 시계는 그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그를 구해주는 일종의 만능 도구였으며, 시간을 다시 되돌리는 능력이 있다. 수십 번, 아니 어쩌면 수만 번의 노력으로 혜자는 간신히 아버지를 살리게 된다. 아버지는 사고의 흔적으로 절뚝거리는 다리를 떠안고 살게 되었지만, 혜자는 더 큰 사건에 직면하게 된다. 시간을 너무 많이 돌린 탓일까. 더 이상 25살 김혜자가 아닌, 어느덧 할머니로 변해버린 모습을 보고 절망하게 된다.
이왕 이렇게 된들, 또 어떠한가. 시간이 지날수록 혜자는 자신의 모습을 받아들이고, 그의 주변 사람들 또한 그의 속도에 맞추어 살아간다. 항상 느리고 답답해 보이기만 했던 그들의 인생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혜자는 나름의 이유와 사연들 하나하나에 공감하게 된다. 마음보다 훨씬 뒤처지기만 하는 몸을 떠안고 살아가는 그들에게 우리는 따뜻한 미소보다 이유 없는 미움을 드러낸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한다. 결국 혜자는 특유의 당참과 용기로 효도원에 있던, 늙어버린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애인 준하를 위험에서 구출하기에 이른다. 황혼빛에 물드는 지는 해를 보며 그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저물어가나 생각이 될 즈음. 숨겨져 있던 이야기가 등장한다.
‘나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습니다.’ 이 말은 장르를 시간여행 판타지에서 현실을 보여주는 드라마로 바꾸어버린다. 나의 심장을 쿵 내려앉게 만들며, 그동안의 실마리를 하나하나씩 풀어간다. 그곳은 효도원이 아닌 요양병원이고, 현실의 나이가 아닌 25살 속의 기억 안에서 계속 맴돌며 살아가는 혜자. 이것이 바로 진실이었다. ‘늙은 내가 젊은 꿈을 꾸는지, 젊은 내가 늙은 꿈을 꾸는지..’라며 말을 이어가는 그의 목소리 톤, 숨 하나하나에는 애틋함과 그때의 행복함을 그리워하는 간절함이 묻어 나온다. 평생의 짐이자 숙제였던 아들의 절뚝거리는 다리를 몇 번이라도 다시 시간을 되돌려 지켜내고, 모진 고문 끝에 죽음을 맞이한 남편 준하 또한 끝까지 구해내고 싶었던. 혜자에겐 가장 완벽한 해피 엔딩이자, 좋은 꿈이었을까.
<눈이 부시게>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화면 밖 우리들에게도 물음을 던진다. 당신들의 삶은 어떤지, 여기에 태어난 이상, 모든 걸 누릴 자격이 있다며. 누군가의 엄마였고, 딸이자, 누이, 그리고 나 자신이었을 우리들에게 작은 순간들을 놓치지 말고 살아가라며 용기를 건넨다. 어쩌면 가장 평범하고, 그리 대단하지 않은 삶을 산 혜자이지만, 누구보다 우리 모두의 인생을 대표하고 있다. 아들의 손을 잡고, 해가 저무는 장면을 보는 게 제일 행복하다는 그는 그 순간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중이다.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삶 깊숙이 들어가고, 누구보다 포근하게 안아주는, 눈이 부시도록 아프고 따뜻한 작품이다.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김혜자 배우의 얼굴은 계속 머릿속에 남을 것 같다. 조금은 더디고, 되돌아가면 어떠한가. 그게 바로 우리들의 인생이자, 찬란한 아름다움으로 기억될 순간임을 분명하기에. 내일을 또 살아가는 모든 이들에게 작은 응원을 보내고 싶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