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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이 사라졌다 (2019)

나를 완전히 되찾는 과정.

by JW

이 장편 애니메이션은 '나우펠'이 아닌 '나우펠의 잘린 손'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해부실에서 나와 탈출하게 된 손은 그동안의 나우펠의 인생을 보여주며 몸의 주인을 찾아나간다.


흔히 손은 육감 중 '촉각'에 속하는 중요한 부분이다. 여기서 보여주는 손의 기억 또한 무언가를 뇌로 기억해내는 게 아닌 오로지 그때의 느낌, 촉각에 의존해 보여주는 게 인상적이다. 어릴 때 손에 담아냈던 자잘한 모래, 여러 소리들을 녹음하면서 잡았던 마이크의 차가운 온도 등 오로지 손이라서 가능했던 기억들을 풀어낸다.


중간중간 손의 시점으로 보이는 앵글들이 재미를 더한다. 특히 라비올리 캔을 쓴 채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거리를 이리저리 돌아다닌다던지, 에스컬레이터를 힘겹게 오르는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촉각 이외에도 청각을 상징하는 녹음기와 마이크는 나우펠의 가족에 대한 사랑, 그리움,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또한 그의 인생의 전환점이 되기도 한다. 그동안 끝없는 불행을 맞이해오고, 결국 사랑을 찾아와 일하게 된 목공소에서 손까지 잘린 그에게는 더 이상 일말의 희망도 보이지 않음이 분명하다. 자신은 정해진 운명에 따라 살아갈 뿐이라고. 남극을 가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었지만, 손 사고로 무기력해 보이던 그는 옥상에 마이크와 녹음기를 남긴 채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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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을 바꾸려면 절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을 해봐야 한다는 그. 마치 누군가의 의해 조종당하는 게 아닌 나 자신이 삶의 주인공임을, 외치듯이 그는 건물에서 달려 나가고, 불가능해 보이는 일을 해낸다. 그 후로 그는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 나가며, 지금 이 순간도 어쩌면 남극에 가기 위한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을 것이다. 원작 소설의 제목이 '행복한 손'인 이유도 이제는 자신 없이도 완전하게 살아가는 주인을 본 손의 감정이었을까. 제목만 얼핏 봐서는 조금 기괴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손의 입장에서 본 주인의 인생은 안타까우면서도 희망적인, 다시 찾지 않아도 될 이유가 되었을 것이다.


소재 자체가 너무 독특해서 그것만으로 충분히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자신의 삶의 의미를 되찾아가는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은 많이 보았지만, 자신의 일부분의 부재로 인해 다시 완전히 채워지는 인생을 그린 작품은 처음이라 신선함을 준다. 그렇기에 오랜 기억으로 남게 될, <내 몸이 사라졌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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