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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W Mar 21. 2020

레토 (2018)

뜨겁고 눈부셨던 우리들의 그 여름.


아무 정보가 전혀 없는 채로 보게 된, 그래서 더 새로웠고, 왜 이제 만났을까 싶은 영화 중 하나.

한국과 러시아 둘을 휩쓸었던 빅토르 최의 음악 인생을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그는 자신만의 음악 철학이 있고, 남들이 잘 쓰려하지 않는 솔직한 20대들의 사연을 담아내 멜로디로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 


당시 80년대 구소련은 다소 정체되어있고, 자유로운보다 삭막함이 지배하는 시대였다. 록 음악은 일종의 반문화였으며, 이에 편견을 깨기 위해 다소 어울리지 않는 오페라 극장을 연상시키는 곳에서 록을 연주하는 나름의 문화 운동 또한 시작된다. 중간중간 음악이 흘러나오며 나오는 재미있는 모션 그래픽들이 역동성에 힘을 가하는데, 자리에서 일어나 춤추고 싶고, 그들의 목소리를 따라 부르고 싶어 했던 당시의 관객들의 갈증을 해소해주는 듯하다. 이게 뮤직비디오의 일부분인지 헷갈리게 할 정도로 음악과 함께일 때의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행복에 물들어 있다. 


이런 상황들이 나올 때마다 흐름에 또 다른 독특함을 더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내레이션 같기도 하고, 음악이 시작될 때 가사를 읊조리기도 하는, 흡사 공연의 MC 같은 역할을 자처한 한 남자. 매 음악이 끝날 때마다 '이건 실제 상황이 아니야'라는 메시지를 제시하면서 사라진다. '영화'라는 프레임의 경계를 뛰어넘으며 관객에게 가까워지는 시도를 하려는 연출이라 더 인상적이다. 


<레토>의 진짜 주인공은 어쩌면 빅토르 최가 아닌 것 같다. 누구보다도 빅토르의 재능을 먼저 알아봐 주고, 그에게 명예와 잠깐의 사랑을 내주기도 했던 마이크가 나에겐 더 가깝게 다가왔다. 유난히 그가 방을 떠나는 장면이 많이 비춰지는 것 또한 그의 마음에 자리 잡은 일종의 공허함을 풀어내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가 녹음을 도와주고 난 후 홀로 자리를 떠날 때 나오는 기타 소리는 그렇게 외로울 수가 없다.


흑백영화이지만, 그들의 음악에 대한 열정, 사랑 그리고 인생은 가장 다채롭게 빛을 낸다. 그 시기를 담기에 가장 아름다운 계절이자, 싱그러운 그 여름을, 이 작품은 추억하고 있다. 




<레토> 엽서.

1.

80년대 특유의 레트로 느낌을 살리고 싶었다. 의외로 강한 색감끼리 만나게 되면 색다른 조화가 이루어지는 점이 포인트. 유태오 배우는 정말 빅토르 그 자체임을 보는 내내 알게 해 준다. 오른쪽에는 마치 필름 사진과 같은 효과를 주어 일종의 팝아트 풍 또한 느껴지게 했다.


2.

영화 자체의 본질을 따르려는 엽서. 흑백에 이어지는 역동적 그래픽적 이미지들을 추가했다. 

<레토>에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음악이 자연스럽게 스며든다는 것. 그들이 말하는 모든 곳에서 음악은 존재하고, 그들이 대화를 한다고 해서 스피커의 음량을 의도적으로 줄이지 않은 채, 그 자체로 내버려 둔다. 레토에서 음악은 더 이상 배경음이 아닌, 인물보다도 더 주체가 될 수 있음을, 새로운 관점으로 보여주어서 더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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