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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W Mar 23. 2020

너는 여기에 없었다 (2017)

트라우마. 그 무거움에 대해서.


어제 카페에서 상영해서 처음 보게 되었고, 집에 오자마자 한번 더 본 작품. 인물에게 깊숙이 뿌리내려 있는 '트라우마'를 너무도 잘 시각화하여 보여준다. 트라우마의 기억은 일정한 시기, 순간에 생각나는 것이 아닌 누군가의 일상을 끊임없이 쫓아다니며 갑작스럽게 드러난다. 이야기 흐름 사이에 툭하고 나오는 강렬한 조각들을 끊임없이 마주하며 조는 괴로워하고, 그래서 계속 자살을 시도한다.


는 자신이 싫어하는 아버지와 너무도 닮아있다. 아버지가 가정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던 망치를 살인 도구로 사용한다는 점, 타월을 얼굴에 두고 화를 삭이는 점 등 사소한 것들에 그의 얼룩이 묻어 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모든 것을 잃어 아무런 희망도 남지 않았을 때, 니나라는 아이가 그에게 손을 내민다.


둘은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간다는 공통점이 있는데, 이 작품에서 그런 요소들을 독특하게 표현하는 방식들이 있다. '거울'은 우리가 자신의 얼굴을 똑바로 직면하게 되는 순간이자, 무언가를 마주 본다는 의미가 있다. 유난히 조가 거울을 보는 장면이 많은 것도, 니나가 차 유리창에 비춘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보는 것 또한 트라우마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자세를 비유적으로 보여준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가 차창 너머의 자신의 얼굴을 보다가 곧 그것이 니나의 얼굴로 바뀌는 것 또한 그렇다.


첫 장면부터 나와 인상적이었던 '숫자 세기'도 그렇다. 특히 어떤 좋지 않은 상황에 처했을 때, 숫자 세기를 하며 이것 또한 지나갈 것이라는 심리를 보여준다는 생각이 든다. 0이 되어도 상황이 좋아지지 않았던 때가 다반사이지만, 결국 서로를 마주 보며 '정말 아름다운 날'이라고, 말하는 순간 또한 온다. 


음악부터 세세한 연출 하나까지 디테일한 면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케빈에 대하여>에서도 느꼈지만, 린 램지 감독은 붉은색을 정말 잘 쓰는 것 같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누군가로 인해 또다시 살아가야 함을 느끼게 해 주는, 트라우마로 시작하지만 일종의 위로로 결말을 맞이하는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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