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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W Jun 20. 2020

환상의 마로나 (2019)

너만 행복하다면 나도 좋아.

 반려동물은 우리의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족이다. 서로의 말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이들이 주는 감정적 유대감은 엄청나다. 가끔은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말이 통한다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너무 궁금한 적이 있었을 것이다. 여기, 강아지 마로나를 통해 이들의 인생 이야기를 들어보자.



"무가 되는 순간, 이 순간만큼은 이름, 과거, 미래도 없다."

 마로나가 초반부에 하는 말이자, 이 말을 기반으로 한 그의 회상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마로나는 9남매 중 막내인, 하트 모양 코를 가진 강아지이다. ‘사랑과 뼈다귀 앞에서는 어떤 종이든 평등하다’라는 엄마의 지혜를 물려받으며, 영원히 가족들과 함께일 줄 알았던 그는 새로운 나날들을 맞이한다.



<사랑, 그리고 우주>

 잠깐의 만남을 제외하고, 마로나는 총 세 번의 큰 사건들을 마주한다. 세 명의 너무도 다른, 주인들을 만나면서 그의 이름과 정체성은 자꾸만 바뀌게 된다. 태어났을 때는 아홉이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아나, 사라, 그리고 마로나로 이름이 정해진다. 이에 따라 마로나의 행복의 영역은 점점 더 넓어진다. 가족들과 대부분 시간을 보내던 어린 시절엔 숫자 9와 엄마의 온기가 행복의 전부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주인에게도 그 공간을 내어 준다.


  ‘사랑’은 마로나의 전부이자, 그의 인생에서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는 감정이다. 첫 번째 주인이자, 곡예사인 마놀과의 첫 만남은 그러기에 더욱 강렬하다. 서로를 바라보는 눈동자를 클로즈업하여 보여주는 장면 속, 마로나의 큰 눈동자 안에는 온 우주가 담긴 채 빛나고 있다. 누군가와 함께 있는 매 순간이 그에겐 행복이지만, 특히 둘만의 시간을 가질 때에는 더할 나위 없다. 이들이 느끼는 이 감정을, 작품은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한다. 이때, 그들이 함께 있는 공간은 마치 틀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마치 스크린 속 프레임을 벗어날 것만 같이 무한대로 공간이 확장되고, 그 공간은 우주까지 멀리 뻗어 나간다. 그리고 그곳에 단둘이 존재함으로써 이 순간이 영원했음을 바라는 마로나의 심리를 그려낸다. 


 여기서 표현되는 공간, 색감들은 주인의 특색 또한 잘 드러난다. 곡예사인 마놀의 공간은 그의 움직임에 걸맞는 유연함, 곡선의 자유로움이 잘 전달되는 화면들로 이루어져 있다.  하늘로 날아오르는 듯한 인물의 움직임, 빙글빙글 도는 모습들에서 이상을 추구하는 삶의 방식을 엿볼 수 있다. 그를 둘러싼 따뜻한 톤의 색감들에는 꿈에 대한 열정이 느껴진다. 이와는 대조되는, 공사 일을 하는 이스트반은 다소 딱딱함이 돋보인다. 반복되는 직선들의 조화, 어딘가 단단함이 느껴지는 그의 방과 일터는 규율에 따라 움직이고, 표현 방식이 조금은 서툰 그의 성격까지 묻어나 있다. 차가운 색감이 많이 느껴지는 그는 미래보다는 현실에 안주하는 면이 있다. 



 영원한 줄만 알았던 행복은 서서히 그 끝을 보인다. 행복은 불행의 징검다리라는 말과 함께, 마로나는 매 순간 마지막이 익숙해져야 함을 배운다. 개와 인간의 행복은 다르다. 마로나는 모든 게 그대로인 평범한 일상을 사랑하지만, 인간은 끊임없이 새로운 걸 원한다. 인간은 자신의 명예와 성공, 또는 곁에 있는 애인이나 친구를 우선순위에 두고 행동하지만, 그는 곁에 있는 인간이 자신의 전부이자, 1순위이다. 그렇기에 이별이 다가오는 매 순간을, 그 쌉싸름한 슬픔의 냄새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고 마로나는 도망치듯 떠난다.




<마로나 중심의 시선들>

 <환상의 마로나>는 우리가 이들과 함께하지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시선들을 하나씩 보여준다. 단순히 카메라가 비추는 시선이 아닌, 마로나의 입장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앵글들과 사람들의 눈동자 안에 비치는 마로나의 모습들 같은 세심한 눈길들을 많이 느낄 수 있다. ‘인간은 우리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우리는 인간의 말을 이해해야 한다.’ 어쩌면 마로나의 엄마가 이 말을 한 순간부터 우리는 줄곧 무언가를 놓치고 있었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인간은 너무도 이기적이지만, 그런 인간을 마로나는 무엇보다 모든 것을 다해 사랑한다. 자는 동안 곁에서 지키는 매일들, 주인의 이름 철자 하나하나까지 전부 다.



 매번 주인을 위해 도망치듯 다른 곳으로 멀리 떠나던 마로나지만, 이번만큼은 다르다. 솔랑주가 탄 버스를 따라 달려가는 그는 전과 달리 주인과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누구보다 간절하다. 그의 이전 기억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나가며, 헤어짐을 다시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일까. 결국 마지막까지 주인을 지켜낸 마로나는 맨 처음 장면으로 다시 되돌아간다. 이렇게 마로나의 긴 여정이 끝이 났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마로나는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려고 하는 인간을 이상한 동물이라 말하지만, 그가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사실은 이런 순간들이다. 어쩌면 진정한 행복의 가치란 작고 사소한 나날들이 모여 만드는 것이 아닐까. 영화는 마로나의 시선을 통해 스쳐 지나가는 순간들을 따스하게 기억하고, 소중히 담아두려 한다. 그의 세상은 눈부시게 아름답고, 한낮의 꿈처럼 벅차오른다. 그렇기에 형형색색의 동화책을 연상시키는 이미지들, 현실과는 거리가 먼 방식들로 마로나의 세계를 펼쳐낸다. 우리는 그의 일생과 함께 성장하고, 주변 인물들을 통해 우리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사실 마로나의 행복 상자처럼, 어느 순간 꺼내보면 그 가치가 충분한 작은 것들이 모여 우리의 우주를 만들어 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 사랑스러운 여정을 통해 잠시나마 나에게 소중했던, 소소한 추억들을 다시 돌아보며 미소짓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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