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 소녀와 거인
*OTT 플랫폼 wavve를 통해 관람한 25th BIFAN 상영작 후기입니다.
스포일러 주의!
처음 프로그래머분의 설명과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정말 거인이 나오는 판타지물이라고 생각했다..
전체적인 미장센만 본다면 마치 패션 브랜드의 아트 필름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독보적이고, 과감한 색감을 쓰고 있어서 더욱 그렇게 느껴진다. 자유로운 화면비의 변화까지 더해져서 나에겐 자비에 돌란의 작품들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사실을 파헤쳐 보면 꽤 먹먹하고 슬픈 이야기이다. 어딘가 비밀이 많아 보이는 아이, 낸시는 자신이 우주에 있는 별의 공주 포르투나라고 생각한다. 친구들은 라디오와 같은 통신기기를 이용해 포르투나를 다시 고향으로 돌려보내려는 노력을 하고, 파란 꽃이 주위에 피어있으면 거인이 있다는 신호라는 것 또한 알려준다. 상황은 친구 니콜라의 사고사로 인해 갑작스럽게 급변한다.
이후 현실인지 꿈인지 모를 상황들이 등장한다. 낸시는 매일 그림치료를 통한 심리 상담을 받고, 건너편 아이를 유심히 바라보기도 한다. 집 옥상에서 마을 사람들과 트램펄린을 하며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친구와 매니큐어를 바르며 놀기도 한다. 그러다 갑자기 엄마가 자신의 심리 상담가가 되어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던 아빠는 이제 막 출소했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결국 이 모든 것들은 아이가 겪고 있는 '시간 지남력 장애'에 초점을 맞추면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시간 지남력 장애는 시간. 장소. 사람에 대한 기억상실이 순차적으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전반부의 행복한 순간들은 기억 상실로 인해 아이가 만들어낸 환상이었고, 후반부가 되면서 하나둘씩 진실이 드러나는 전개 방식을 가진다. 사실 전개 방식이 두루뭉술해서 중반부까지는 의문을 가질 부분들이 많은 건 사실이다. 결국 상담 선생님이 포르투나에게 건네는 말과 엔딩 크래딧 직전에 나오는 실제 사건들의 요약본으로 우리는 이것이 아동학대를 겪은 아이들이 가진 상처를 그려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낸시라는 이름 또한 자신의 진짜 이름이 아닌, 아빠가 선물로 준 공주 인형의 이름이라는 것 또한 마음을 아프게 한다. 포르투나는 낸시처럼 행복한 생활을 하고 싶은 마음에 자기도 모르게 그 이름을 소중히 간직했을 것이다. 아이가 매번 쫓기고,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던 거인은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가해자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겉으로 볼 때는 판타지 그 자체였지만, 사실은 잊고 싶은 현실을 탈피하기 위한 장치였다. 그렇기에 유난히 화사하고 밝은 빛들이 주를 이루었던 화면들도 더욱 안타깝게 느껴진다. 이렇게 <포르투나: 소녀와 거인>은 최근까지 화두가 되고 있는 문제를 동화적 요소를 이용해 굉장히 섬세하게 풀어낸다. 자극적인 장면 없이 강한 경각심을 주는 연출이어서 인상적이고, 어른들의 방관과 침묵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