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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W Aug 08. 2021

심판(Aus dem Nichts, 2017)

어쩌면 가장 정의로운 선택일 마지막 선택.

우리는 언제나 예상치 못한 사건들을 맞이하고, 이를 해결해야 할 때 때론 법보다는 자신의 선택이 더욱 타당하다고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그렇기에 상황에 따른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는데, 법이 내린 결정이 부당하다면, 내가 직접 심판을 내리는 것은 어떨까?      






갑작스러운 상황을 나타내는 독일어 원제(Aus dem Nichts)와 같이, 영화는 약 2시간의 러닝타임 동안 어디로 튈지 모르는 긴장감을 구사한다. 사랑하는 가족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던 카디아는 네오나치의 공격으로 한순간에 일상을 잃어버리게 된다. 폭발 사고로 남편과 아들이 곁에서 떠나는 안타까운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화 오프닝 신에서 이 모든 일이 발생하는데, 폭발음이 들린다던가 배경 음악이 깔리는 등의 장치적 요소는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평범한 일상을 이어가던 중, 예고 없이 시작되는 비극을 제일 현실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아이를 데리러 다시 찾아온 건물은 무너져 있고, 앞에는 경찰차와 구급차가 즐비하게 늘어나 있다. 뒤이어 이어지는 절규를 시작으로 모든 일이 벌어진다.     


전체적인 화법은 사건 자체보다는 그 일을 기점으로 변화하는 증인이자 또 다른 직접적인 피해자인 카티아의 시선으로 올곧게 직진한다. 제일 소름이 돋았던 점은 남편이 일하는 건물 앞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눴던 여성이 용의자라는 사실. 여성이 건물 앞에 세운 자전거 안의 폭탄으로 가족은 처참하게 희생된 것이다. 수사 초반 남편은 마약 밀매를 했다는 오명을 받고 희망을 잃어버렸던 카티아는 좋지 않은 선택을 시도하지만, 어느덧 사건에 윤곽이 잡히며 다시 의지를 일으켜 본다. 이상적으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에 해결되는 모습들보다는 실제 상황에 기반하여 끝없는 법정 공방을 보여준다. 관객에 입장에 서 있는 우리는 최대한 빠져나갈 구멍이 없도록 옥죄어 가는 변호사의 변론에 안도하면서도, 작은 꼬투리를 잡고 공격적으로 늘어지는 검사의 반론에 함께 분노하게 된다. 판이 점차 카티아의 승소로 기울어져 보이지만, 도무지 끝이 날 것 같지 않은 재판들은 지침과 새로운 불안감을 조성한다.      





이렇게 생생한 현장감과 더불어 색다른 카메라 워킹은 영화의 또 다른 감각을 불어넣는다. 그동안 봐왔던 재판 현장을 다루는 영화들은 주로 발언이나 표정들을 강조하기 위해 인물들의 얼굴을 위주로 클로즈업하는데, 카티아가 증인석에서 발언석으로 이동하는 동선을 부감 샷(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보는 샷)으로 잡는다. 상황을 생각지 못한 시점으로 내려다보면서 엄숙한 법정의 분위기에 더 집중하고, 압도당하게 된다. 또한 분명 유리하게 작용하던 재판이 예상치 못한 결과를 맞이했을 경우를 잘 보면 알프레드 히치콕의 현기증을 떠올리게 하는 카메라 기법(카메라를 뒤로 빼면서 렌즈를 줌인)을 사용한다. 이런 섬세한 연출들을 통해 인물의 복잡하고 절망적인 심리를 강조하면서 당시의 상황을 더욱 피부로 와닿게 표현한다.   

   

무엇보다 가장 눈여겨볼 만한 것은 불도저같이 끝을 보는 카티아의 태도이다. 특히 가족을 다루는 경우에 종종 등장하는 신파 장면 없이, 가해자의 손을 들어준 법정과는 또 별개로 그는 자신만의 심판을 준비한다. 아마 이 장면이 가장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는 하이라이트가 아닐까 싶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방식으로 영화는 파격적인 엔딩을 맞이한다. 법이 정당하지 않은 판결을 내렸을 때 진정한 정의구현의 방식을 카티아 스스로 만들어감으로써 딜레마를 깨버리고, 가장 직접적으로 와닿는 해결 방식을 해낸다. 





<심판>은 지금까지 봐왔던 법정 공방을 다루는 영화 중에서도 진솔함이 잘 묻어나고 피해자 위주의 입장을 유지한다는 점에서 윤리와 정의를 구현하려는 진중한 시도가 돋보인다. 게다가 독기 어린 시선을 끝까지 지켜내는 다니앤 크루거의 눈빛을 보고 있자면, 복수만큼 용서를 재촉하는 것은 없다는 말이 떠오른다. 카티아는 자신을 파멸로 이끌면서까지도 결국엔 법 앞에 승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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