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누가 진짜 어른일까.
‘미성년’이란 제목을 들었을 때, 흔한 아이들의 성장 드라마인 줄 알았다. 예상과는 달리, 그 뜻은 단지 ‘성년이 아닌, 만 19세 미만의 아이들’에 한정되지 않고, 그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 작품이다. 우연히 같은 학교에 다니는 두 아이가 서로의 부모님이 불륜관계라는 걸 알게 되며 그들의 삶은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 작품에 나오는 인물들은 ‘책임’에 대해서 각기 다른 태도를 보인다. 불륜을 저지른 어른들은 그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들을 밀어내며 회피하고, 이를 모두 받아들이는 과정에 있는 아이들은 다르다. 고작 17살 미성년인 주리와 윤아는 이 충격들을 다 받아들이며 책임을 떠안는다.
흔히 ‘철이 없다’는 말들은 어른이 아닌 아이에게 어울리지만 이 작품 속 어른에겐 누구보다도 잘 어울린다. 불륜으로 임신을 하게 된 미희는 당장 애를 지우라는 딸 윤아에게 엄마 편 좀 들어달라며 아이처럼 울음을 터뜨리고, 아이를 낳은 후에도 과자로 끼니를 때우며 자신의 몸도 챙기지 않는다. 같은 상황에 처한 대원은 원래의 가족을 지키지도, 불륜관계를 유지하지도 못하는 이도 저도 아닌 상태가 된다. 결국은 상황을 피하기 위해 먼 곳으로 떠나버리기도 하지만, 더는 나아지지 않는다.
여기서 관객들은 대원에게 답답함과 큰 분노를 느끼게 되는데, 이를 해소시켜 주는 장치가 독특하다. 이 문제라는 매듭에 엮인 인물들이 직접적으로 가하는 것이 아닌, 뜬금없는 곳의 낯선 이들이 대신 그에게 일종의 응징을 가한다. 그가 도피처로 정해 달려간 인적이 드문 한 부둣가. 그곳에서 그는 한 아주머니에게 돈을 뺏기고, 갑작스럽게 불량 학생으로 보이는 아이들에게 물리적인 폭력도 당하게 된다. 뜬금없이 이런 일들을 겪고 난 후, 도움을 청할 곳이 부인 영주뿐이라니. 그를 비꼬는 일종의 코미디적 요소도 존재함이 보인다.
이 대책 없는 어른들과는 달리, 영주는 중립적인 역할이자 아이들을 다잡아주는 존재이다. 다시 말해, 일종의 ‘좋은 어른’인 셈이다. 어떻게든 무언가를 해결해 나가려는 그들에게 ‘너희들 잘못은 아무것도 없다’며 용기를 주고, 미희네의 금전적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도 한다. 스크린 안에서 영주는 가장 따듯한 사람이자, 무엇보다 아이들에게 책임을 떠맡기지 않으려 노력하는 성숙한 어른이다.
아이들의 행동은 아이러니하다.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아닌, 주리와 윤아 이 둘은 현실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간다. 미희의 새로 태어난 아이를 보호하는가 하면, 출생 신고서도 이들이 직접 작성한다. 결국 아이가 죽었을 때에도, 일종의 장례(?)를 치러준 것 또한 두 아이뿐이다. ‘이제 다 컸네. 이제 어른이겠구나.’ 중간중간 어른들이 이들에게 하는 말들은 너무 잔인하고 무책임하다. 저 말을 한 어른들도 그들에게는 상황을 악화시키는 인물이고, 그들에게 무관심할 뿐이다. 아이들은 누구보다 성숙하고 이성적으로 문제를 직면하고, 어른들을 위로해주기도 하며 성장한다.
제목이 <미성년>인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이 작품은 ‘과연 누가 진정한 어른인가?’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애 같은 어른, 어른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미성년은 일종의 어른들을 비판하는 단어임에 동시에, 작품 속 유일한 미성년이었던 주리, 윤아의 섬세한 심리를 잘 묘사해 낸 말이다. 전반적인 문제는 어른들에게 있지만, 잘 이겨내 가는 이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싶었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닐까.
이 작품이 김윤석 배우의 첫 감독 데뷔작이라고 하는데, 솔직히 조금 놀랐다.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인물의 심리를 잘 잡아내고, 전달하는 메시지 또한 인상적이다. 그의 앞으로의 작품 또한 기대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