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를 멈추며, 나를 배웠다.

이번엔 나와 손을 잡기로 했다.

by nahyeon


연애가 끝났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 동안

내게 남은 건 익숙하지 않은 공허함뿐이었다.


그 고요함을 견디지 못한 나는

어느새 다른 누군가로 그 빈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사실은, 외로움을 들켜버린 걸지도 모른다.


누군가 다가오면 애써 ‘괜찮은 이유’를 찾았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은 무의미한 반복 같았다.

설렘도, 깊이도 없이 그저 흘러갔고

“이번엔 괜찮겠지”라는 말로 스스로를 달랬다.


그런 관계는 사랑이라기보단,

그저 마음의 빈자리를 채우려는 습관에 가까웠다.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리면

나는 너무 쉽게 마음의 문을 열었고

서둘러 시작된 관계는 늘 빠르게 끝이 났다.

내 마음속에도 오래 머물지 않았다.


그러다 한 사람을 만났다.

다정했고, 뜨거웠다.

하지만 가까워질수록 그의 내면은 어딘가 병들어 있었고, 그 아픔은 나까지 병들게 했다.

결국 나는 도망치듯 그 관계에서 나왔다.


그 후, 연애를 멈췄다.

그렇게 닫힌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고,

나는 창문 너머로 조용히 들여다보거나

가끔은 뒷걸음질치기도 했다.


그즈음, 처음으로 내 감정에 이름이 붙는 걸 보았다.

하나의 유형 안에 내가 관계에서 되풀이해 온 모습들이 놀라울 만큼 정확히 담겨 있었다.

읽는 순간, 낯설 만큼 나 자신이 선명해졌다.

“이게… 나였구나.”


불안이 먼저 앞서고,

감정을 억누르며 관계를 이어가려 애썼던 나.

상대의 감정까지 끌어안으려 했던 이유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그래서 더 쉽게 지치고, 더 깊이 무너졌던 거다.


내 감정에도 이름이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조금은 편안해졌다.

처음으로, 나를 이해하려는 시선이 생겼고

그 덕분에 나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누군가와 함께하기에 앞서,

먼저 나와 손을 잡아야 했다.

그렇게 나와 친해지는 시간을 시작했다.


고요함을 견뎠다.

익숙해질 즈음엔, 어쩌면 즐기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에 몰두했고, 혼자 있는 시간도 나쁘지 않았다.


‘나 이제 좀 괜찮아졌나?’

싶을 무렵, 누군가가 똑똑 두드렸다.


익숙한 불균형,

그리고 어김없이 찾아온 불안.


그렇다. 그 감정은 여전히 내 안에 있었다.

오래전부터 함께였기에, 쉽게 사라질 리 없었다.

그저 잠시 조용했을 뿐.

괜찮아진 줄 알았지만,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이젠 그 감정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 안다.

억누르거나 없애는 게 아니라

그저 옆에 두고 같이 걸어가는 일이라는 걸.


감정이 날 삼키기 전에

먼저 알아차리고,

내 방식대로 조절해 보는 것.

조금씩, 천천히, 내가 할 수 있는 만큼만.

그게 지금의 나를 지켜내는 방식이다.


이젠 혼자인 시간이 익숙해졌고,

나는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다.

가끔 외롭고 허전한 순간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뭐,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긴다.


그리고 언젠가,

또 누군가가 문을 두드린다면

이번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안녕, 서툴러도 괜찮아.”


아직은 흔들릴 테지만,

그때의 나는

조금 더 나를 믿고

조금 더 솔직하게,

무엇보다 나답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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