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이와 대박이

“그 작음이 가진 온도는 생각보다 컸다”

by nahyeon


요즘 글을 쓰다 보면, 괜히 혼자 너무 깊어지는 느낌이다.

처음엔 감정을 꺼냈고, 어느새 인간관계를 해부하다가결국엔 내 불안을 문단 단위로 묘사하고 있었다.

머릿속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끈적하게 달라붙고, 글은 점점 무겁고 진지해졌다.


그래서 오늘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편하게 쓰고 싶다.

무언가 남기려는 건 아니지만,

쓰면서 괜히 기분 좋아지는,

그런 아무 의미 없이 의미 있는 이야기 말이다.




아빠의 일터, 마두령에는 강아지 두 마리가 산다.

이름은 멍이와 대박이.

멍이는 말 그대로 ‘멍멍’ 짖어서 멍이,

대박이는 아빠가 “대박 나자!”며 지은 대박이다.

뭔가 의미가 있을 줄 알았는데,

그냥 이름 그대로였다.


참고로 내 지인 강아지 이름은 구찌다.

젖꼭지가 아홉 개라서.

구(9) + 찌(찌찌).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네이밍의 본질은 결국 단순함, 직관, 그리고 발음의 찰짐 아니겠나.

모든 게 완벽했다.


나는 이런 어이없는 귀여움이 좋다.

이름만 들어도 웃음이 나고,

어떤 모습일지 상상되는 것.

그래서 누가 반려 동물을 키운다고 하면,

나는 늘 이름부터 묻는다.




유독 추웠던 겨울이었다. 크리스마스가 막 지나고,

아빠에게 톡이 하나 왔다.

“영하 20도에 누가 놓고 가서 키우고 있다.”

그게 전부였다.


대박이 입양 통보, 단 한 줄.

무심한 문장인 듯했지만, 그 안에 다 들어 있었다.

버려진 생명 하나, 그걸 묵묵히 품은 사람.

묘하게 따뜻했다.

아빠식 ‘입양 완료’ 선언이었다.


곧이어 도착한 사진 한 장.

흰 양말을 신은 듯한 발.

얼굴은 세상 억울하다.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묻고 싶어지는 표정.


그 억울함이 오히려 귀여움을 두 배로 만들었다.

보는 순간 피식, 웃음이 터졌다.

그렇게 대박이는 우리 가족이 됐다.


그날 이후 나는 “사진!”, “영상!”, “지금 뭐 해?”를 달고 사는 귀찮은 딸이 됐고,

아빠는 점점 묵묵부답.

전화하면 “보내줄게~” 하고 툭 끊고는 소식이 없다.

그러다 가끔, 아무 말 없이 툭— 사진 하나가 도착한다.

부탁도 안 했는데 먼저 보내준 날엔 괜히 감동이다.

이 사람, 밀당 좀 한다.





차가 없는 뚜벅이에게 양주의 산 언덕은 사실상 타지다. 지도상으론 가깝지만, 출발 전부터 피곤한 거리.


그래서 나는 전략을 바꿨다.

‘대박이’ 등장 서사를 앞세워,

뽀짝한 사진을 무기로 차 있는 친구들을 낚았다.

영업은 늘 성공적이었다.

(요즘은 그냥 택시를 탄다. 역시 돈이 최고다.)


그렇게 도착한 마두령.

아빠가 예전부터 자주 드라이브하던 산길이었다.

어느 날, 거기에 휴게소를 만들겠다고 선언하시더니

정말로… 만들었다.


처음엔 제법 원대했던 것 같은데

이런저런 현실의 손길 덕분에

공간은 작고 아담하게 정리됐다.

테이블도 놓고, 꽃도 심고, 장작불도 피우고.

밤에 가면 진짜 고기 구울 맛이 난다.


이쯤 되면 아빠의 ‘산속 정원 로망’에 약간의 상업적 핑계를 얹은 느낌이랄까..?


그리고 그 옆엔, 손님 눈치를 보며 뭐라도 떨어지길 기다리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있다.




대박이가 이 이야기의 주인공처럼 보이지만,

사실 진짜 주인공은 멍이다.


멍이는 원래 다른 집에서 8년을 살다가 사정으로 인해 파양 된 아이였다.

처음 왔을 땐 낯설어하고, 눈치만 봤다.

늘 촉촉한 눈, 어딘가 슬픈 표정.

지나가던 사람조차 “저 강아지… 우울해 보여요.” 하고 걱정할 정도였다.

이름처럼 마음에 큰 멍이 든 것만 같았다.

강아지에게도 상실이 있다는 걸,

그 아이가 처음 알려줬다.


가정집에서만 지내던 멍이에겐

산 언덕의 겨울은 낯설고 버거웠다.

따뜻한 옷을 입혀줘도 덜덜 떨었고,

슬픈 눈으로 눈치까지 보니, 누가 봐도 안쓰러워 보였다.

그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던 아빠가 툭 던지듯 말했다.

“사람들이 보면 내가 괴롭히는 줄 알겠네.”


낮에는 사람들로 북적이지만,

해가 지면 그 산을 지키는 건 멍이 하나였다.

혼자 남겨진 밤들이 멍이에겐 무척 길었을 것이다.

버려졌다는 기억 위에 혼자라는 시간이 덧붙여졌고,

그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깊은 외로움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던 중, 대박이가 나타난 거다!

작고 따뜻하고 정신없는 생명체 하나가

말도 없이 멍이 집에 들어가 꼭 붙어 잠들었다.

어색함도, 경계도 없이.

마치 원래부터 같이 살던 것처럼.

그저 곁에 있다는 사실 만으로

멍이의 마음을 녹였다.


그 작음이 가진 온도는,

생각보다 훨씬 컸다.



귀를 물고, 꼬리를 물고, 장난을 쳐도

멍이는 화를 낸 적이 없었다.

오히려 조용히 뒤따르며, 천천히 무언가를 가르쳤다.

우리가 알려준 적도 없는데, 대박이는 멍이를 따라 숲으로 가서 볼일을 보고,

자연스레 둘만의 질서가 생겨났다.


대박이는 그렇게 멍이에게 세상을 배웠고,

멍이는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를 회복해 갔다.


오랜만에 마두령에 들렀을 때,

멍이의 눈빛이 달라져 있었다.

촉촉하던 눈에 반짝임이 생기고,

늘 우울했던 얼굴엔 단단한 온기가 들어 있었다.


동물도 사람처럼,

누군가를 통해 달라지고

누군가를 품으며 살아간다는 걸 또 한 번 느꼈다.



지루하던 산속은 어느새 동물농장이 됐고,

아빠는 힘들다면서도 전보다 훨씬 자주 웃는다.


지금은 몸집이 훌쩍 커져서

"대박아~" 하고 부르면

그 반기는 몸짓에 내가 뒤로 나자빠질 때도 있지만,

내 눈엔 아직도,

흰 양말을 신은 조그마한 아기 강아지다.


마두령 데크 한켠,

그 아이들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은

이제 내 마음에도 자리를 잡았다.


아무 말 없이 쉬고 싶을 때,

다녀오고 싶은 곳.


대박이는 그렇게,

늦게 도착한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우리 가족의 계절을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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