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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피아노쌤 Mar 23. 2024

고속도로 데이트


어둡다. 


차선도 잘 안 보인다.


금요일이다. 울산을 가야한다. 밤 운전에 비까지 내리면 운전하기 상그럽다. ktx 표도 매진이다. 할 수 없이 운전을 하고 가야 한다, 토요일 새벽 일찍 서둘러 가자 해도 안 된다고 한다. 토요일 아침 일찍 스케줄이 생겼다고 한다. 할 수 없이 아르바이트하는 나의 제자에게 학원을 맡기고 6시가 되기 전 해 있을 때 출발한다. 



금요일 저녁은 주말 전이라 고속도로도 만 원이다. 뜨악~ 할 수 없다 살살 조심조심 운전을 하는 수밖에 없다. 금요일 저녁이면 얄짤없이 울산으로 외야 한다. 남편과 나의 약속이다. 학원 운전을 시작하기 전 다른 공부는 다 포기해도 경주 박물관 대학 공부는 꼭 더 하고 싶다고 했다. 토요일 수업이라 오케이를 호기롭게 외치고 시작된 학원 운전을 맡겼다. 



모두 내보내고 혼자 운영하는 학원엔 할 일이 많다. 남편은 어설프게 널린 전선들을 전부 안전한 선으로 교체해 주었다. 전선에도 두께와 kw를 감당한 용량 같은 게 있다는 걸 나는 몰랐다. 그냥 마트에서 주는 데로 스위치만 꼽으면 되는 줄 알았는데 겨울에 히터를 하나 더 장만했더니 자꾸 다운이 됐다 남편이 손봐주니 끄떡없이 겨울을 지냈다. 



학원 기사님이 된 남편은 분리수거와 쓰레기 버리는 걸 자기 일인 양해준다. 집에서 하는 모습 그대로...^^ 아이들에게 칭찬하고 토닥이며 집중 안 하는 친구들 옆에서 격려하고 응원의 말을 아끼지 않는다. 학원 기사님 플러스 상담 선생님 역할까지 해준다. 아이들도 기사님께 자기 피아노 치는 거 봐달라고 연신 자랑이다.



 남편이 우리 학원이 서 제일 피아노를 못 친다는 걸 아이들도 다 안다. 얼마 전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내가 시간이 나면 레슨하고 아니면 혼자 연습을 한다. 정해진 시간 없이 짬짬이 피아노를 연습한다. 근데 60이 넘어 첫 피아노를 배우니 쉽지 않은 모양이다. 어눌한 그이의 손이 얼마나 귀여운지 모른다. 아이들이 자진해서 알려주겠다고 하니 학원이 아이 선생님이 생겼다. 남편도 고사리 같은 아이들이 옆에서 알려주겠다 하면 웃음이 가득하다. 아이들에게 3분 이상 레슨 하지 말라고 엄포를 한다, 아이들도 나도 웃는다. 남편 덕분에 학원이 더 즐거워졌다. 피아노를 못 쳐줘서 감사하다. 아이들이 기사님보다 잘 친다고 어깨가 으쓱하다. 참내~ 아이들 맘이란 게~ 귀엽다. 



그런 남편이 꼭 가야 하는 토요일 스케줄을 빵꾸내자고 할 수 없다. 약속했으니 가야 한다.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시간인 걸 나도 안다. 가야지...



유난히 고속도로가 밀린다. 사고다 빗길 사고 때문에 밤은 더 깊어진다. 휴게소에 들어 잠시 쉬며 저녁을 먹고는 다시 운전을 한다. 이럴 때 강의를 듣거나 음악을 듣는 게 좋다. 마침 온라인 강의가 있어 함께 듣는다. 서로 의견을 나눈다. 가끔 그러다 다투기도 하고 의견 대립이 있다. 금방 말을 이어간다. 좁은 차 안에서 그러다 보면 금세 절반만큼 와있다. 상주를 지나고 있다



음악을 듣자고 한다. 그가 좋아하는 올드 팝송과 내가 좋아하는 곡들이 차 안에 가득하다. 이때만큼 맘이 잚 맞을 때가 없다. 남편이 좋아하는 곡을 나도 좋아하게 되었다. 하도 듣다 보니 그도 내가 좋아하는 고을 이미 알고 있어 차 안에서 운전을 교대로 하면 서로가 좋아하는 곡을 먼저 재생시킨다. 블루투스 연결된 차는 스피커가 짱짱하니 좋다. 좁은 공간이라 그런지 음악을 즐기기 꽤 근사하다. 




밤비 덕분에 차창에 머무는 빗방울도 음악이 된다. 비에 관한 음악이 저절로 선곡된다. 이 재미가 쏠쏠하다. 수십 곡의 음악이 플레이되면 감성은 어느 날 어느 시간으로 돌아간다. 가슴이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슬쩍 눈물이 고이기도 한다. 어떤 음악은 추억의 그 장면을 그대로 현실에 가져오는 힘이 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경주를 지나고 있다.



비가 그쳤다 땅이 촉촉하긴 하다. 막내 시누이 전화다. 어디까지 왔냐고 내일 만나 놀자고 한다. 하하하 또 비닐하우스 농사지으러 가야 한다. 아싸~ 내일은 쑥을 좀 캐야겠다. 여린 쑥이 제법 올라왔을 테다. 지난주 동서와 시누이가 쑥국을 끓여줘 맛나게 먹었는데 이번엔 내가 쑥이랑 냉이를 캐고 싶다. 새순이 얼마나 돋았을까? 과실수에 새순이 살짝 올라온 걸 보고 왔는데 새순이 움텄을까? 울산 가면 언제나 밭에 간다. 궁금하다. 이쁜 연초록이 생각만 해도 맘이 연초록으로 변한다. 서울산 톨게이트를 지나고 있다. 아파트가 보인다. 


밤데이트 종료.



금요일 밤비 내리는 고속도로를 무사히 지나왔다. 


소파에 몸을 던졌다. 스스로 눈이 감긴다.



#밤비 #고속도로 #밤데이트 #글쓰는피아노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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