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 피아노쌤 Apr 02. 2024

비닐하우스의 꿈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 사랑하는 우리님과 한 백 년 살고 싶어. 룰루~


이럴 적 흑백 테레비에서 들려오는 노래다. 이담에 나이가 들면 저렇게 살아야 하는가 보다. 각인을 시킨 걸까? 아님 '초원의 빛'이라는 미국 드라마를 보며 나도 모르게 무의식 속에 자리 잡은 걸까? 어릴 적 기억은 사라져 전혀 생각 속에 없다가 어느 순간이 되면 툭하고 튀어나오는 보물 상자 같다. 물론 기억하기 싫은 기억이 떠오를 때도 있다. 그땐 눈을 감는다. 







뭐라도 좋다. 무의식의 세계에서 숨겨둔 마음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중일 지도 모른다. 수십 년간 도시생활을 하면서 귀촌 하고픈 맘이 생겼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좀 더 솔직하게 돈이 모자라, 시골에 땅을 사놓고 그곳에서 노후를 보내고픈 마음이 더 가깝다고 해야겠다. 친정과 시댁 가까운 곳에서 형제들이 어울려 살기를 희망하는 건, 남편의 오랜 바람이었다. 나도 모르게 젓어 들었을 것이다. 세뇌 당해서 일 테다. 한때 학원이 제법 잘 됐을 때 남편은 날 꼬셨다. 땅에 투자하라고 가능한 우리가 노후를 보낼 곳에... 그러다 보니 지금의 비닐하우스가 그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다. 


초원의 집도 아니고,  멋진 전원주택도 아지만, 어느 순간 내 꿈이 심어지고, 꿈이 자라기 시작한다.  꿈이 있는 사람은 나이 들지 않는다고 했나? 아니 나이가 들거나 말거나 상관없다. 어떤 꿈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뭔가 희망 사항 하나쯤 가지고 산다는 것은, 사는 의욕을 지니게 하기 충분하다. 


2023년 처음 우리 학원에 아르바이트하러 온 내 제자의 딸이 있다. 28살 아가씨다. "ㅇㅇ야 꿈이 뭐니?" 


꿈이 없단다. 어떻게 뭘 해야 하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른다고 한다. 아무런 의욕도 없다. 그냥 엄마가 이모 같은 내게 가서 그림은 배우라고 보냈다고... 학원 일을 보고 배우고, 그림도 배우라고 내게 온 조카 같은 아이다. 4살 꼬마일 때부터 알고 지냈다. 복도식 아파트, 옆집에 살면서, 매일 문을 열고 하루에도 몇 번을 오가며 자란 딸 같은 아이다. 대학을 졸업하고, 애견샵을 하다 접고 의욕상실했다.  직장도 안 다니고 집에서 그냥 무기력하게 지내다 내게 온 아이다. 그의 엄마는 고등학교 때 그림에 관심 많았던  딸을, 미술원을 운영하는 내게 보냈다,  "언니 우리 ㅇㅇ이 그림도 알려주고 언니의 에너지와 열정도 영향받게 해줘" 그렇게 시작되었다. 


처음 두어 달은 1주일에 2번 오는 학원을 빼먹고 지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다 점점 그림에 흥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난 ㅇㅇ에게 딜을 했다. 내가 그림을 2시간 지도해 줄 테니, 넌 우리 학원 아이들 그림 도우미 선생님이 되어달라고 제안했다. 물론 아르바이트비는 주기로 했다.  결석을 없어지고 점점 아이들과 친해지기 시작한다. 그림 실력도 좋아진다. 하나씩 그림이 숫자가  늘고 재미를 붙인다. 아이들과 지내는 것도 즐거워한다. 아이들과 친해진다. 나랑도 더 친해졌다.


작년 가을 대학을 가라고 옆꾸리를 찔렀다. 편입생에 도전했다. 불합격이다. 다시 도전하라고 또다시 해보자고 했다. 2024년 ㅇㅇ이는 미대 3학년 편입생이 되었다. 나랑 같은 대학 후배가 된 것이다. ㅇㅇ에게 어제 물었다 


"ㅇㅇ아 꿈이 뭐니?" 환하게 웃는다. 

"저 미대를 졸업하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선생님처럼요"

나도 웃는다.

"너 그림도 그려야지..."

일단은 뭔가 하고 싶은 게 생기고 목표가 생겼다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선생님 꿈은요?"

둘은 눈을 마주친다. 또 웃는다

"난 비닐하우스 마을 공동체를 운영하면서 평생교육의 꿈을 실천하고 싶어. 배우고, 가르치고, 나누고, 함께 어울려 사는 것이야"

"여전히 꿈이 똑같으시네요" ㅎㅎ

"또 하난 늘 감사하며 살고 싶어" 그렇게 우리의 수다가 이어졌다. 이제 내 딸이 된 ㅇㅇ는 웃는다. 맨날 웃는다. 미소가 이쁜 딸이 눈을 마주치며 소리 내어 웃을 땐 활짝 핀 꽃 같다. 


저 푸른 초원의 집은 아니라도, 가슴에 작은 꿈 하나 지니고 산다는 건, 사는 맛이 달콤하다는 것이다. 달달한 꿈을 향해 달리는 오늘도 감사하다. 하루하루 작은 천국을 만들어 가는 건 '감사' 때문일 테다. 비닐하우스에 봄이 왔다. 거친 겨울의 마른 풀이 연초록의 싹을 틔우고 꿈도 같이 자라고 있다. 남편과 이웃과 형제들과 저 푸른 비닐하우스의 꿈이 자란다. 


예전부터 꿈꿔온 일을 시작하려고 한다.

내 나이 60일 때..

비닐하우스에서 내가 쓴 책과, 내가 그린 그림 작품을 전시하고, 내가 연주하는 피아노 몇 곡으로 내 생일 파티를 열고 싶다. 이제 그 준비를 시작하려 한다. 그리고 5년마다 10년마다 반복적으로 그렇게 축하를 하고 싶다. 가족들과 이웃들과 나랑 함께 지내줘서 고맙다고 내가 자축의 파티를 열고 싶다. 몇 번의 파티를 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뭐 내 희망 사항이니까... 소박하게 그렇게...


ㅇㅇ이의 꿈이 자라고 있다. 주말에 도서관서 공부를 하고 왔단다. 얼마나 기쁘던지...

내 꿈도 자라고 있다. 그림을 그려야겠다. 60이 오기 전에 준비를 해야지...

ㅇㅇ이와 내 꿈이 우리 작은 학원에서 그려진다. 우린 서로를 응원하며 연필을 든다. 그리고 하얀 백지 위에 꿈을 스케치한다.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빛이 밝아온다. 


당신은 꿈이 있나요?

당신의 꿈은 뭔가요?



#꿈이있나요? #글쓰는피아노쌤  #책과강연










매거진의 이전글 봄 오는 소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