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인 줄 알았는데 어느 날 그 바람 부메랑 된다. 손맛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종이책만 고집하다가 고집은 버렸다. 책은 종이 냄새 맞으며 줄도 그어가며 메모도 하는 맛이지... 아날로그적인 생각을 버렸다. 디지털에 길들여지면서 밀리의 서재를 구독한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다. 가끔 밀리도 미울 때가 있다. 책을 보다 여기저기 책 쇼핑을 하듯 기웃거리게 된다는 거다. 완독보다 찔끔거리며 목차만 보기도 한다. 그러면 뭐 어때 하지만 때론 오히려 시간을 잡아먹는 하마가 된다.
울산을 자주 오가는 형편인지라 오디오 북으로 차 안에서 1권의 책을 듣방하기엔 딱 좋다. 집에서 오디오북을 들으면 중간중간 날아간다. 아무래도 집안일을 하다 보니 소음과 집중력이 떨어지는데 장거리 여행이나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딱이다.
어제도 밀리를 기웃거리며 책찔끔을 하다가 필이 꽂히는 문장을 발견했다.
1) 원문장
아티스트 웨이 마이 웨이 / 장윤영
친구 집 서재 책장에 꽂혀있는 세계 문학 전집을 보며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갈색 책장에 잔뜩 각이 선 채로 꽂힌 책들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 친구의 얼굴과 이름, 집 위치까지 기억난다.
2) 나의 문장
가난은 꿈 꿈꾸게 하는 씨앗이다. 초등학교 2학년 어린 맘에 진열된 세계문학 전집은 부자들만의 전유물로 여겼다. 감히 엄두도 못 냈다. 유리문이 굳게 닫힌 책장은 손자국이 날까 봐 만지지도 못했다. 우리 집엔 없는 수십 권 수백 권의 잘 정리되어 꼽힌 책장은 넓은 방 2면을 꽉 채웠다. 가운데 커다란 사장님 책상도 떡하니 있다. 앉은뱅이 작은 1인 책상, 때론 둥근 밥상이 책상 되는 우리 집과는 사뭇 다르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책이 장식이었다는 걸 알고 얼마나 감사하든지.
서재를 꿈꾸며 살게 된 어느 날 무의식 속에 잠자던 어린 날이 보인다.
책장! 커다란 갈색 유리문이 굳게 닫힌 그 책상 앞에 조그만 여자아이가 모가지 길게 빼고 하늘 보듯 같은 색 수십 권의 전집을 쳐다본다. 동그란 눈에 호기심이 가득하다. 그보다 부러움이다.이야~ 속으로 들어가는 작은 목소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금박의 책을 자세히 쳐다본다. 일부는 한자라 못 읽는다. 어떤 책은 너무 두껍고 무거워 보였다. 부자들의 무게처럼.
50년 후
책에 쌓여 또 책에 치여 산다. 집안 구석구석 책이 널브러져 있다. 거실에 서재에 침대 위에... 학원에 ... 사방이 책이다. 남편 책과 내 책 그리고 비닐하우스에 옮겨둔 책. 하얀 책벌레 때문에 오랜 된 책은 삭아 들어간다.
함부로 꿈꾸면 안 되나 보다.
오늘 또 교보문고에 책을 주문하고 말았다. 병이다. 불치병.
#꿈 #책 #글쓰는피아노쌤 #매일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