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의 의미를 알 것 같다.
내가 일을 할 때 원래도 아이들을 좋아하는 편이고
연차가 적지 않은탓에 환자 컨디션 안 좋거나, 치매가 있거나, 아기환자가 오는 경우 내 담당이 아니더라도 가서 도와주거나 아예 바꿔주곤 했다.
아이를 낳고 키우고나선 아이들을 핸들링하는 실력이 아무래도 아가씨들보단 나아서 마취과장님들도 찾으시는 편이었고.
엄마가 되고보니 어린 아이들이 수술하러 들어오면 괜히 내새끼 생각이 나서 한번 더 손이가고
바깥에서 잘못한게 있든 없든 죄인처럼 기다릴 부모님 생각에 여유가 있으면 자주 대기실에 가서 수술 상황을 설명하곤 했다.
(이게 별거 아닌것 같아도.. 엄청 귀찮은 일임)
환자를 받고, 병동으로 보내기까지 함께하는 일이라 병동만큼은 아니지만 보호자들도 마주치고
여러가지 이유로 수술 중간에 보호자분을 찾아 대화를 나눠보면서 든 생각이 있다.
어떤 환자의 보호자든 수술실에 가족을 보내고 마음편히 계시진 않는다.
일분 일초가 느리게 흐르는 대기실에서 수술실 문만 열리면 내 가족이 나오니 목이 빠져라 쳐다보고 계신다.
아이의 보호자인 부모님들은 아이가 수술하는 이유가 무엇이건간에 [내 잘못] 이란 생각이 깔려계신 분들이 많다.
아이가 다친 것도 내가 못봐서, 교통사고가 난 것도 내가 하필 그 길로 가서, 선천성 기형도 내가 임신했을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 .. 등등
제3자가 봤을 땐 그렇지 않아도 엄마 마음은 그런가보다.
고령의 부모님의 보호자에게 환자 정보를 물어봤을 때 머뭇거리고 전화를 돌려 다른 보호자에게 물어보는 경우나
비급여 물품을 사용해야한다고 동의를 구할 때 가격 문제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는 꽤 많지만
아이가 수술하는 경우에는 거의 없다.
이 병원에서만 6년 넘게 일하면서 난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 금방 끝나는 수술에 비급여 물품을 다 사용한다고 체크되어 있으면 우리가 아까워서 사용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정도로.
환자가 수술실에 입실하고 나면 병동 간호사가 설명을 한다.
“몇시간 정도 걸릴것이니 대기실에 계시거나 병실에서 기다리셔도 됩니다.”
어린아이의 보호자들는 백이면 백 수술실 앞 대기실에서 몇시간이고 기다리지만
그외의 보호자들은 복잡하고 불편한 대기실보다는 병실에서 대기하는 것을 선호한다.
생각해보면 생활 속에서도 그런 것 같다.
부모님이나 우리가 사용할 물건은 [가성비]를 따지게 되는데 아이들이 입고 먹고 사용하는 것들은 최저가를 찾을지언정 내 기준에 [가장 좋은 것]을 해주고싶은 마음.
이런 마음이 인스타그램 속 남의 아이들이 가고, 먹고, 입고, 가지고 놀고, 공부하는 것들을 내 아이와는 맞지도 않는데 자꾸 사게되고 따라하게 되는 것 같다. (애들 물건을 잘 팔면 굶어 죽지 않을 것 같다)
그렇게 해주지 못하면 마음이 불편하고, 속상하고, 심할땐 화가나고 우울해진다.
왜 그렇게까지.. ?
나도 금방 자라고 기억도 못하고 그게 얼마나 가치가 있는지도 모를 아이보다는 어른들이 더 누리는 것이 당연히 더 좋다고 생각했었다.
이 문제를 두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아이에게 해주고싶은 것
= (아이에게 필요한 것) + (내가 아이였을 때 채워지지 않았던 결핍을 채우고싶은 마음)
금방 클 걸 알지만 나이키에서 산 예쁜 후드는
어릴적, 친구들이 입는 브랜드 옷을 부러워하면서도 그걸 부모님께 내비치지 못했던 나의 어린시절의 결핍까지 채우고싶은 욕심이 더해진 결과인 것이다.
아이를 키우면서 몰랐던 내 모습, 내 행동의 이유를 찾아간다.
전문가가 아니기에 100% 맞다고 확신할 수도 없다
하지만 많은 부모들이 그렇게 행동한다.
[내리사랑] 이라는 말을 부모가 되고서야 진짜 이해하게 된다.
부모님을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사랑의 결] 이 다른 부모를 향항 사랑과 자식을 향한 사랑.
우리의 부모님 또한 그렇게 우리를 키웠기에 서운하거나 불만을 표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는 부모가 되어가는 중이다.
아이를 사랑하며 내 부모님의 딸도 사랑하려 노력중이다.
그렇게 난 부모가 되어가며 효도도 하고있다.